#13.

by Rosa Kim

사고 후로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급격히 달라진 일상으로 인해 많은 시간들이 좋았다고 할 수는 없겠다. 그 시간 속에 감사한 일들도 많았지만 그것들이 없어도 좋으니 사고 전으로 갔으면 싶었던 적도 많았다. 여전히 나는 달라진 일상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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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고에 꽂힌 책들은 사고 후로 한 번도 꺼내보지 못하고 있으며, 신체적으로 무리가 오는 때면 어김없이 어지럼증과 이명이 나타난다. 때때로 보이지 않는 그 선을 넘기지 못하는 상황에 스트레스가 생기곤 하지만 그래도 조금 지나고 나면 괜찮아진다. 아프면 찾을 병원이 있고 그곳에서 편히 치료받을 수 있는 것 자체가 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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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때에, 힘든 때에, 나 혼자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 때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조차 모른다면 더 나아가 그런 상황을 오롯이 나 혼자 견뎌야 한다면 그보다 더 힘든 순간이 있을까 싶다. 그래서 지금은 혼자가 아님이 매 순간 감사하다. 아프다는 말을 잘하지 못하며 살아온 내가 이제는 참지도 않고 잘 얘기한다. 참는 게 익숙했던 환자라 처음에는 선생님들의 애를 태웠지만 이제는 환자로써 가져야 할 소통의 자세를 배웠다. 환자는 그 어느 순간보다 솔직해야 한다. 치열하고 척박하기도 한 세상에서 솔직함은 단점이 되기도 하고, 족쇄가 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몇 평 되지 않은 작은 진료실 안에서 환자의 솔직함은 의료진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나침반이지 않을까 싶다. 검사 결과로도 진맥으로도 알지 못하는 사각지대. 그 사각지대를 환자 스스로 알려줘야 온전한 관계 속에서의 치료가 시작된다 생각한다. 물론 이런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의료진을 만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불행들을 위로라도 해주는 듯이 내게는 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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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님이 말을 해주셔야 제가 알아요." 늘 입을 꾹꾹 닫고 누워있는 내게 넌지시 건네 온 한마디가 두고두고 생각이 났다. 상황이 불편해서, 내 상태가 불만스러워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익숙치 않아서 여러 이유로 나의 사각지대는 늘 지켜져 왔다. 미련하게 참을성만 많은 성미가 되려 독이 되는지도 모른 채. 그토록 입을 닫고 있는 나는 조금씩 성장하는 사회성과 더불어 '함께 하는 법'을 함께 얻었다. 그래서 이제는 주치의 선생님은 페이스 메이커의 존재가 되었다. 함께 하다 보니 고질적으로 앓고 있던 신체적 불편함들을 떨쳐내고 건강이라는 키워드가 내 일상에 드리워지고 있다. 사실은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무난한 삶을 살고 있다. 간혹 이벤트가 있지만 내 심리는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다. 일상적 루틴에도 변수가 없어 매우 좋다. 이제는 조금 욕심을 내서 조금씩 활자를 접해보고 싶다. 사고 싶은 책들도 조금씩 눈에 들어오고 다시 북카드가 채워지고 있다. 조금 더 재미난 일상을 만들기 위해 나는 또 뭐하면서 놀지 즐거운 고민을 시작한다. 그런 고민을 하다보면 다림질하지 않은 셔츠를 입어도 조금은 괜찮다. 참, 치료를 하면서 심한 강박증도 많이 나아졌다. 외출할 때 입으려는 옷에 조금이라도 주름이 있으면 입지 않고 빨랫통으로 넣어버렸는데 이제는 '뭐 어때. 그냥 입자.'하고 입고 나간다. 스스로의 만족으로 생긴 강박증이라 귀찮거나 남에게 파해를 주지는 않지만 나 스스로 인지한 변화라 재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