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When the Light Breathes

앨리스 달튼 브라운 : 빛이 머문 자리

by Rosa Kim

"전시회 같은 거 좋아하세요? 지금은 자극을 분산시켜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얼마 전 전시회 하나를 추천받았다. 지독한 가을의 한가운데에 있던 날, 속절없이 무너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느꼈던 날.
평소 같으면 대답만 하고는 말았을 텐데 그날은 카톡으로 받은 링크를 들어가 보고, 바로 티켓팅을 했다. 그 와중에 비밀번호를 까먹어 본인인증도 하고 비밀번호를 찾고, 바로 예매를 하고, 바로 택시를 탔다. 10여분 사이에 모든 것을 했다.
대체공휴일이라 관람객이 많아 1시간의 대기가 있어야 한다는 말에 바로 돌아서 나왔지만, 결국 그 전시회를 그 다음주에 갔다. 처음은 과제를 하는 기분으로 갔다. 다녀와서 전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기에 그 약속을 위해. 몇 점의 그림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스윽 스치듯 보고만 올 생각이었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라도 있을 테니. 그런데 깨알같이 적힌 설명들부터 타이틀에 대한 글, 심지어 중간중간 기둥에 적힌 문장들까지 하나씩 읽고 있었다. 난시가 있는 나는 안경을 가지고 가지 않아서 잔뜩 미간을 찌푸리며 실눈을 뜨며 정독하며 전시를 봤다. 간만의 전시였고 요즘은 어떤 전시들이 있을까 궁금해 다른 전시회도 찾아봤고 취향에 맞는 두세 개의 전시를 발견해 조만간 갈 예정이다.

전시회는 참 좋았다. 사실 이 한 문장으로 끝낼 수없을 만큼 좋았다. 그래서 그날의 느낌을 잊을까봐 얼른 메모장에 적었다.

여전히 나는 무기력하고 지루하고 따분한 지독한 가을을 보내는 중이다. 한계가 다했다고 느끼던 날에 그녀만의 처방을 받았고, 그 처방을 받은 나는 되묻지도 않고 바로 실행이 옮겼다. 어쩌면 "네?"라는 말조차 하고 싶지 않은 날이었을 텐데 그런 날에 이런 추진력이 나왔다. 그거 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때때로 색다른 그녀만의 처방을 받는다. 의사 말은 잘 듣지 않는 환자인 나는 희한하게 이런 그녀의 처방을 받는 날에는 평소에도 나오지 못할 추진력이 나온다. 지금 생각해보건대 그때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하지 않는 것보다 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더 컸던 것 같다. 적어도 내게 해가 될 일을 말하지 않는 것 정도는 아니까. 그리고 마음 한 켠에 아주 작게나마는 내게 이런 제안을 할 때는 그 어떤 순간보다 더욱 조심스럽고 고민 끝에 하셨을 그녀의 정성과 그 마음에 대한 감사함이 있으니까.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말을 잘 듣는 환자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 그 영향인지 올 가을에는 단풍구경을 다녀보려 여기저기 찾아보고 있다. 그녀의 말처럼 한 곳에 응집된 자극을 분산시켜보기 위해서.

다음에 이어질 그녀의 처방이 궁금하다. 그녀의 선택은 언제나 옳았고 또 나와 잘 맞아서 걱정되지 않는다. 비록 피드백이 많은 환자가 아니라 치료에 애를 먹기도 하실 거다. 오락가락이 심한 나와는 반대로 그녀는 참 한결같다. 1년 넘게 봐왔는데 매 순간 진심이고 언제나 최선을 위해 노력한다. 소통이 쉽지 않은 환자라 응답할 때까지 항상 기다려주신다. 오래 보다보니 내 이야기를 잘 못하는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기쁜 일, 슬픈 일, 화나는 일.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일상과 생각을 나눠본다. 서로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소독약 냄새 사이로 진료실에 이야기 꽃이 핀다. 또다시 나는 입꾹꾹이 되어버렸지만 그때는 참 좋았다. 참 좋았노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또 하나 생겼다. 그래서 입꾹꾹을 벗어나면 하고 싶은 이야기가 꽤 많을 듯하다.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다.

KDR.Jo, I always appreciate you being with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