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추워져 몸이 움츠러들면 들수록, 마음도 움츠러든다. 평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무 일이 되어버리고. 평소에는 얘기로 꺼내던 것을 얘기하지 않게 된다. 내가 예민해서, 성격이 유순하지 않아서, 까탈스러운 성격이라서. 모든 것을 내게로 돌리는 것도 이젠 하기 싫어졌다.
절벽 끝에 아슬아슬하게 펴있는 꽃처럼 내 하루가, 내 일상이, 내 모든 것이 선과 선의 사이를 넘나 든다. 그러면서 내 인내심이 이토록 많았는지 새삼 놀란다. 발만 조금 헛디디으면, 한 눈을 팔다가 휘청이기라도 하면, 세찬 겨울바람에 웅크리다가 중심을 잃다가는 저기 아래로, 끝이 보이지 않은 곳으로 떨어질 것 같은 불안함을 안고 있다.
그렇게 만들어진 건조하고 회색빛 일상에서 밝은 빛은 찾아보기 어렵다. 굳이 찾으려고 하질 않는다. 이렇게 또 깨닫는다. 빛이 없어도 살아는 진다. 그래서 내가 굳이 빛에 연연하지 않으며, 없다도 애달파하지도 않고, 아쉬워하지도 않게 살아가는 이유다. 오래 그렇게 살아왔다. 그래서 내게 한 줄이 밝은 빛은 영광스러운 존재이다. 그렇지만 영광은 영원이 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내게는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단어인 '사랑'은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굳이 그 발자취를 찾으려 하지도 않고 나는 이미 회색빛 일상이 익숙하다. 절벽가 앞의 나는 모든 것을 혼자 한다. 나의 안녕함, 불편함, 예민함을 온전히 내가 견뎌내며 조절을 하기 급급하다. 조절되지 않은 것을 알지만 미련하게 그 짓을 또 해본다. 내가 연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그토록 인정하기 싫은가 보다. 이런 상황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내가 쓰지도, 듣지도, 보지도, 만지지도 않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황이다. 지극히 나 다운 일상이다. 그런데 이런 와중에, 옆의 사람에게 눈길 한 번 주기에도 벅찬 나에게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며 사랑받기에 합당한 사람이라고 한다. 회색빛 가득한 일상에 가장 고귀한 단어가 들어왔다. 그럼에도 살아가라고, 사라지지 말라며 속삭이는 채송화처럼 말하던 그녀는 나도 눈을 찡그리게 되는 강렬한 빛을 쏘아준다.
아무래도 망한 거 같다. 나는 회색빛 일상이 좋은데 여기저기서 구멍이 나 그 사이로 자꾸 빛이 들어온다. 그 빛들이 북두칠성을 만들더니 이제는 큰 곰자리, 그 옆의 작은 곰자리까지 만들어냈다. 더 둘러보니 이건 회색빛이 아니라 은하수다. 내 암막커튼이 은하수가 되어버렸다.
사랑이란 그만큼 고귀하다. 고귀해서 막아낼 재간도, 도려낼 방법도 없다. 내가 무엇을 생각해내든 그 모든 것들을 무용하게 한다. 이런 나임에도 '사랑받기에 합당한 자',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말을 가만히 듣고 있게 할 만큼 나를 무력하게 만든다. 그 말이 뭐라고 바로 옆의 절벽이 나를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고 있는데 나는 어느새 만들어진 별자리가 가득한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랑의 온도가 너무 뜨겁고, 사랑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던 내가. 이제는 사랑의 온도, 사랑의 무게 따위는 재지도 살피지도 않는다. 정말 사랑은 고귀한 것은 둘째치고 알아가도 모를, 그래서 더 예측할 수 없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