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고독한 축제

by 솔내음

"책을 내보면 관계가 확실히 정리됩니다. 주위에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남지요, 친한 친구에게 책을 보냈더니 그때부터 아무 말도 없을뿐더러 연락도 안 해요, 그렇게 그 친구와는 끊어졌어요. “


책을 낼 때마다 이렇게 저렇게 상처를 받는다는 어떤 작가의 글을 SNS에서 읽었다. 책을 내면 적선하는 셈 치고 한 권쯤 사는 아량을 가진 이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한다. 그냥 공짜로 준다 해도 "난 책 안 읽어"라며 손사래를 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 글을 읽는 순간, 오랜 기간 크고 작은 연주회를 하며 느낀 감정이 이입되며 묘하게 위안이 되었다. '아, 나만 느낀 게 아니었구나. 내가 유별나게 예민한 게 아니었어.' 연주자로 살며 수없이 겪어온 그 복잡 미묘한 상처들이 타인의 문장을 통해 비로소 '정상적인 아픔'으로 승인받는 기분이었다.



연주자에게 무대는 책을 내는 작가의 출간과도 같다. 몇 달을 피아노 앞에 혼자 앉아 연습하고, 어렵게 홀을 대관하고, 사비로 프로그램을 인쇄한다. 그 고단한 준비 끝에 드디어 연주회를 알릴 때, 우리는 마음이 조마조마해진다. 초대'를 하지만 마음은 '애원'에 가까워지곤 한다.


"꼭 갈게! 티켓은 어디서 사면 돼?"라고 묻는 이는 가뭄에 콩 나듯 귀하다. 대부분은 은근한 말투로 묻는다.


"표는 어디서 '받을' 수 있어?"


무료 초대권을 당연하게 여기는 공기 속에서 연주자의 자존감은 깎여 나간다. 오겠다는 확답조차 흐릿한 사람들을 위해 나는 뒤풀이 비용까지 미리 계산해 둔다. 귀한 시간 내어 와 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내 돈을 써가며 전하는 셈이다. 결국 연주회란, 나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며 들뜨고, 결국 나 혼자 상처받고 내려오는 '고독한 축제'다.


연주를 준비하며 다짐한다.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 하는 걸까. 다시는 연주회 하나 봐라.' 하지만 이 다짐은 무대 조명이 꺼지는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진다. 단 몇 명이라도 진심으로 내 선율에 감동받고 고개를 끄덕여주었을 때의 그 전율. 그 두 극단적인 감정 사이를 오가는 것은 일종의 중독이다. 외롭고 고단한 길인 줄 알면서도, 다시 피아노 앞에 앉는 이유는 그 찰나의 '공감' 때문이다.

책을 내는 일도, 연주를 하는 일도 결국 '나'라는 사람의 가장 깊은 곳을 세상에 꺼내 놓는 고귀한 작업이다. 그 과정에서 인연의 결이 정리되는 것은 아픈 일이 아니라, 어쩌면 내 삶의 풍경이 더 선명해지는 필연적인 수순일지도 모른다. 내 예술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이들이 떠난 빈자리에는, 비로소 나의 진심을 온전히 아껴주는 사람들의 밀도 높은 다정함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가끔은 상처가 스치고 지나가기도 하지만 이제는 안다. 무대는 홀로 서는 고독한 곳이 아니라, 내 영혼의 떨림이 객석의 온기와 만나 비로소 하나의 우주를 완성하는 축제의 장이라는 것을. 나를 믿어주는 단 한 사람의 박수만으로도 무대는 충분히 뜨거워질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다가올 연주를 계획하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