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자리

빈 공간, 빈 마음

by 솔내음

한 달 반 만에 돌아온 집은 낯설고 서늘했다. 도어락의 기계적인 마찰음 뒤에 으레 따라붙어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발톱이 마룻바닥을 가볍게 치는 경쾌한 타격음, 온몸을 흔들어 환영을 대신하던 그 뭉클한 온기.


호야가 없다.


현관 바로 옆, 호야의 밥그릇과 물그릇만이 주인 잃은 유물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시간이 그곳에서만 멈춘 것 같다. 나는 고요한 집안에 깊게 스며든 호야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낯선 정적이 비수처럼 심장을 파고들었다.


호야를 우리 집으로 데려온 지 어느덧 6년. 영국 지사로 먼저 떠난 사위를 따라가야 하는 딸이 조심스레 입을 뗐을 때, 내 안에서는 잔잔한 파문이 일었다.

"엄마, 나 호야 데리고 가고 싶어. 엄마 생각은 어때?"

말문이 막혔다. 14시간의 비행, 그것도 차가운 짐칸에 갇혀 가야 하는 그 고통을 작은 생명이 어찌 견딜 수 있을까. 주위 사람들은 손사래를 쳤다. "그 먼 길을 어떻게 보내요?", "그냥 살던 데 사는 게 최고지. “

딸아이는 호야의 주 보호자였고, 호야에게 딸은 세상의 전부였다. 무엇보다 말을 할 수 없는 호야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나를 괴롭혔다. '이게 우리의 이기심은 아닐까?' 결정을 뒤집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고개를 들었다.


결국 나는 호야와 딸을 혼자 보낼 수 없어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 달하고도 한 주. 그곳에서 본 풍경은 나의 모든 우려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14시간의 사투 끝에 마주한 영국의 하늘 아래서, 호야는 날아올랐다. 목줄 없이 드넓은 초록 잔디를 온몸으로 내달리는 호야의 뒷모습. 사람과 동물이 경계 없이 섞여 공을 놀이하고, 지하철과 기차에 나란히 앉아 여행하는 풍경들. 그제야 가슴 깊은 곳에서 안도의 탄식이 터져 나왔다.


"데려오길 잘했다."


하지만 안도감 뒤엔 더 큰 이별이 기다리고 있었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는 호야를 떠나보내는 게 슬퍼서 여기까지 왔는데, 알고 보니 내가 정말 이별하기 힘들었던 건 호야와 함께 있는 '내 딸'이기도 했다.




이제 나는 다시 혼자다. 런던 히드로 공항의 차가운 의자에 앉아 서울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나는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홀로 남겨짐'을 마주하고 있다.


집에 돌아가면 또다시 낯선 침묵이 나를 반길 것이다. 호야 없는 집에 적응하는 일은 꽤 오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언젠가 정말로 호야를 영영 떠나보내야 할 날이 올 때, 오늘의 이 서먹함이 다시 반복될까 봐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하지만 나는 슬퍼하는 대신 희망하기로 했다. 호야가 그 맑은 공기 속에서, 더 자유로운 대지 위에서, 딸아이의 손을 잡고 매일 새로운 모험을 즐기기를. 6년의 익숙함을 버리고 떠난 그 용기만큼, 호야의 삶이 찬란한 초록빛으로 가득 차기를 조용히, 아주 간절히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