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행 인생 열차

by 솔내음

1. 서곡

"리스본에서 학회가 있는데, 우리 세 자매 같이 갈까?"

언니의 그 한마디는 마법의 주문이었다. 내 마음은 이미 푸른 타일 '아줄레주'가 빛나고 노란 트램이 언덕을 오가는 리스본의 골목에 가 닿았다. 소설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주인공처럼, 나 역시 일상의 궤도를 이탈해 마법 같은 페이지를 넘길 준비가 되어 있었다.

각국에 흩어져 살던 우리 세 자매의 접선 장소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공항 근처 호텔이었다. 회전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익숙하고 낭랑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하이, 언니들!"

몸이 약해 장거리 비행을 걱정했던 막내였다. 낯선 타국에서 마주한 혈육의 얼굴은 오페라의 화려한 서곡처럼 반가웠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몇 년의 공백을 단 몇 분의 수다로 메워버렸다. 외모도, 성격도, 전공도 딴판인 세 여자. 하지만 같은 유전자의 힘일까. 투닥거리는 농담 속에 몇 년의 세월은 온데간데없고, 어느덧 우리는 어린 시절 그 방안의 소녀들로 돌아가 있었다.


2. 리스본의 두 얼굴: 소매치기와 노을

리스본에 도착한 첫날, 테주강의 노을은 보랏빛으로 물들며 우리를 환대하는 듯했다. 하지만 낭만은 짧았다. 어둠이 내린 거리에서 숙소를 찾지 못해 헤매던 우리에게 천사 같은 미소의 소녀들이 다가왔다.

"도움이 필요하세요?"

구세주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질문 세례로 정신을 쏙 빼놓던 소녀들의 손이 막내의 가방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게 아닌가!

"앗, 뭐 하는 거야!"

막내의 비명에 집시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평화로운 강물 뒤에 숨겨진 리스본의 날카로운 발톱을 본 순간이었다. 잔뜩 겁을 먹고 찾아간 숙소는 또 왜 그리 스산한지. 하얀 벽과 높은 천장, 펄럭이는 커튼 사이로 옆집 사람의 시선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우리는 밤새도록 "왜 호텔 대신 아파트를 예약했느냐"며 서로를 타박했다. 리스본의 첫날밤은 그렇게 아슬아슬한 불협화음으로 저물어갔다.


3. 마법은 아침에 찾아온다

다음 날 아침, 창문을 열자 어젯밤의 공포는 온데간데없었다. 테라스에는 알록달록한 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골목에는 달콤한 빵 굽는 냄새와 진한 커피 향이 감돌았다. 하룻밤 사이에 세상에 마법이라도 걸린 것 같았다.

호시우 광장을 지나 알파마 지구의 좁다란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우리는 시간을 되감았다. 지진과 화재를 견뎌낸 성 도밍고 성당처럼,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중년이 된 우리 세 자매는 그 골목에서 30년 전의 소녀들과 재회했다.

"언니, 이 옷 입어봐. 이게 더 잘 어울려.""야, 그 신발은 내가 신을게!"

매일 아침 숙소는 무대 의상을 고르는 분장실처럼 시끌벅적했다. 자매이기에 가능한 옷과 신발의 무한 공유. 나중에 여행 사진을 본 친구가 "옷을 몇 트렁크나 가져간 거야?"라고 물었을 때 나는 빙그레 웃었다. 한 벌로 세 벌의 효과를 내는 마법, 그것은 오직 세 자매 여행만이 줄 수 있는 특권이었다.


4. 인생이라는 오페라의 앙코르

어느 식당에서 만난 쫄깃한 문어 요리와 요리사의 함박웃음, 그리고 매년 이곳을 찾는다던 다정한 스위스 부부와의 대화. 그곳에서 나는 깨달았다. 세상 어디든 사람 사는 모습은 비슷하며, 낙천적인 마음과 건강한 음식이 있다면 삶은 언제든 축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짐을 싸며 동생이 빠뜨리고 간 자잘한 물건들을 챙긴다.

"칠칠맞기는, 얜 언제 철드니?" 입으로는 나무라지만 손길에는 애정이 묻어난다. 이제 각자의 인생이라는 무대로 돌아갈 시간이다. 이번 여행이라는 막은 내리지만, 우리 인생 후반부의 서곡은 이제 막 연주되기 시작했다.


생은 멀리 돌아가더라도 결국 다시 시작된다. 낯선 리스본의 골목에서 나는 방전되었던 영혼을 충전했고,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나 자신과 다시 접속했다. 이번 세 자매 여행의 기억은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고단한 날들을 버티게 할 따스한 온기가 될 것이다.

아침 햇살에 빛나던 리스본의 아줄레주처럼, 우리 세 자매의 추억도 각자의 마음속에서 푸르게 빛나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