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만났다>
디지털 기술을 빌려 세상을 떠난 이를 다시 만나는 모습. 비록 손에 닿지 않는 허상일지라도, 현실의 벽을 넘어 그리운 얼굴을 마주하는 프로그램을 보며 나는 한참 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그 먹먹함 끝에, 뽀얗게 먼지 쌓여 있던 기억 하나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골동품과 고미술을 유난히 아끼셨던 나의 아버지. 일요일이면 거실 한복판에 앉아 <진품명품>을 시청하는 것이 아버지의 가장 큰 낙이었다. 의뢰인의 소장품에 감정가가 매겨질 때마다 아버지는 마치 당신의 일인 양 흥미진진해하셨다.
“나도 저기 나가면 유명인사 되겠는데? 방송국에서 연락 오는 거 아냐?”
농담처럼 던지시던 그 말씀은 얼마 뒤 현실이 되었다. 직접 참가를 신청하셨던 아버지를 모시고 방송국 세트장에 갔던 날. 조명 아래서 낯설게 상기되어 있던 아버지의 얼굴과, 신기한 눈으로 녹화 현장을 지켜보던 나의 모습이 안갯속 풍경처럼 어렴풋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곁을 떠나신 지 어느덧 이십여 년. 시간의 흐름은 야속해서 아버지의 음성도, 웃음 짓던 눈가의 주름도 조금씩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 아득해지는 기억을 붙잡고 싶었나 보다. TV 속 재회 장면이 불씨가 되어, 내 안의 간절함에 불을 지폈다.
전화기를 든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과거 녹화분을 구할 수 있을까요? 출연자 이름으로 검색이 가능할까요?”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정확한 연도와 회차를 모르면 찾을 수 없다는 사무적인 답변. 기운이 쭉 빠졌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절박한 마음으로 편집팀과 수차례 연락을 주고받은 끝에 기적 같은 소식을 들었다. 아버지의 성함으로 기록된 두 회차분의 영상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며칠 후, 집 앞에 작은 택배 상자 하나가 도착했다. 그토록 기다렸던 USB였다. 하지만 막상 손에 쥐고 나니 선뜻 컴퓨터에 꽂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상자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며칠을 서성였다. 봉투를 여는 순간, 정말로 아버지를 만나게 될 것 같아서. 그리고 그 만남 뒤에 밀려올 그리움을 감당할 수 있을지 몰라서.
마침내 심호흡을 하고 USB를 연결했다. 모니터 너머로 낯익은 시그널 음악이 흐르고 진행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늘의 마지막 의뢰인을 소개합니다!”
재생 버튼을 누르는 찰나, 아득한 시간의 저편에서 아버지가 걸어 나오셨다. 다시는 들을 수 없을 것 같았던 목소리, 특유의 온화한 말투, 물건을 소중히 다루던 커다란 손. 십여 년의 세월을 건너온 아버지가 모니터 안에서 환하게 웃고 계셨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시울이 따끔거렸다.
지나간 시간을 추억하고 사라진 존재를 기억하는 일은 분명 쓸쓸한 일이다. 하지만 슬프지만은 않았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진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 깊은 곳에 켜켜이 저장되어 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 단지 내가 잠시 잊고 있었을 뿐, 아버지는 늘 그곳에 계셨다.
모니터를 끄고 다시 마주한 오늘의 풍경이 새삼 소중하게 다가온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는 누군가에게 사무치게 아름다운 과거가 될 것임을 알기에. 나는 오늘도 내 삶의 소중한 ‘재생 버튼’을 기쁜 마음으로 누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