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들, 순간들

슬픔이여, 안녕

by 솔내음

살아가며 마주하는 수많은 만남과 이별. 돌이켜보니 삶의 매 순간은 크고 작은 작별의 조각들로 채워진 모자이크였다. 스쳐 지나가는 사소한 인연부터, 차마 인정할 수 없어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두었던 거대한 상실까지.

내가 글을 쓰고 싶다고 느낀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내 마음 한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제대로 작별하지 못한 이별들'에 대한 뒤늦은 예의를 갖추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가족과의 이별, 찬구. 아끼던 후배와의 이별…. 가슴 아픈 기억들을 문장으로 옮기기 시작했을 때, 처음에는 차오르는 눈물 때문에 모니터 화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마침표 하나 찍기가 그토록 힘들었다. 하지만 글이 끝을 향해 갈 무렵, 기이한 경험을 했다. 더 이상 울지 않고 담담하게 자판을 두드리는 나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글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마음속에서 엉켜 있던 슬픔의 실타래가 서서히 풀려나갔다. 탁하고 무거웠던 통증이 비로소 맑고 순수한 슬픔으로 승화되는 순간이었다.



어릴 적의 나는 유난히 눈물이 많았다. 한번 터진 울음보는 멈출 줄을 몰랐고, 슬픔은 늘 예고 없이 나를 찾아와 발목을 잡았다. 친구와 놀다 헤어지는 골목길에서도, 정든 교실을 떠나는 졸업식에서도 나는 늘 울고 있었다. 언니가 결혼하던 날엔 이제 집에서 언니의 온기를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 서러워 눈물을 흘렸다.




압권은 내가 결혼을 하고 남편과 미국으로 떠나던 공항에서였다. 그때 찍힌 사진 속 내 모습은 온 세상의 슬픔을 혼자 짊어진 사람처럼 처연하다. 눈은 퉁퉁 부어 있었고, 비행기에 올라서도 눈물은 그치지 않았다. 마침 같은 비행기에는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 미국으로 향하던 대학 동창이 타고 있었다. 남편의 손을 잡고 설렘 가득한 얼굴로 비행기에 오르던 그녀는, 옆 좌석에서 사정없이 울고 있는 나를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 울어?”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보다 가족과의 헤어짐이라는 무게가 나를 압도했던 그 시절, 나는 참 투명하게도 슬퍼할 줄 아는 아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사소한 이별 앞에서는 마음껏 슬픔에 침잠했지만, 정작 거대한 이별 앞에서는 비겁하리만큼 담담해지려 애썼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깊은 상처가 두려워 감정을 꽁꽁 싸매고 외면했다. 병든 엄마를 뒤로하고 미국행 비행기를 탈 때는 세상을 잃은 듯 울었지만, 막상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들었을 때는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것은 강인함이 아니라,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부터 나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방어기제였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여든의 생신날, 평생 매 순간을 축제처럼 즐기며 사셨던 아버지가 무심하듯 툭 던지신 말씀이 있었다.

“딱 3년만 더 살면 여한이 없겠구나. 손주들 커가는 것만 3년 더 지켜보고 싶네.”

아버지는 예감하셨던 걸까. 다가올 작별의 시간을. 그 말씀을 남기신 지 불과 몇 개월 후, 아버지는 소풍을 끝내듯 세상을 떠나셨다.




이제 나는 이별이 다시 찾아온다면 애써 그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려 한다. 도망치지도, 포장하지도 않을 것이다. 슬픔을 온 마음과 몸으로 깊게 통과시킨 뒤, 비로소 찾아올 투명한 평온을 기꺼이 맞이하고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 그 이별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배웅하는 일이다. 이제야 나는 내가 마주했던 모든 이별에 진심 어린 인사를 건넨다.
"안녕, 나의 슬픔. 이제야 너를 제대로 보내줄 수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