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속도로
왠지 모르게 마음이 회색빛으로 물드는 날이면, 나도 모르게 건반 앞으로 다가가 찾는 곡이 있다.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K.330, 다장조.
이 곡을 연주할 때면 삭막한 도시의 소음은 사라지고,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 싱그러운 숲길을 거니는 듯 마음이 맑게 깨어난다.
이 곡은 기교적으로 그리 어렵거나 화려하지 않다. 체르니를 갓 뗀 어린 학생들도 친숙하게 연주하는 곡이다. 하지만 간결한 구조 안에 숨겨진 섬세한 꾸밈음과 악상 기호들을 하나하나 살리다 보면, 모차르트가 숨겨놓은 풍부한 표정들이 살아나기 시작한다. 내게 이 곡은 단순한 악보 그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인생의 가장 빛나던 한 장면을 저장해 둔 ‘기억의 저장소’이기 때문이다.
피아노는 수십 년 세월을 함께한 내 인생의 가장 오래된 동반자다. 첫 시작은 그리 달콤하지 않았다. 나의 첫 선생님은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별명답게 부리부리한 눈매와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가진 분이었다. 손 모양이 흐트러지거나 연습이 부족하면 가차 없이 손등 위로 ‘철썩’ 소리가 났다. 피아노는 내게 즐거움보다는 공포에 가까운 숙제였다. 함께 시작했던 언니는 일찌감치 포기했고, 동생은 매일 레슨실 문 앞에서 눈물로 떼를 썼다. 나 역시 수천 번 그만두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건반이 내는 그 맑은 소리만은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공포와 애정을 넘나들며 도착한 곳은 예술중학교였다. 그곳은 '천재들의 전시장' 같았다. 일찍이 세계적인 콩쿠르를 휩쓸며 화려한 미래를 예약한 친구들이 즐비했다.
매주 열리는 ‘향상음악회’는 보이지 않는 전쟁터였다. 아이들은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기 위위해 화려하고 웅장한 대곡들을 쏟아냈다.
드디어 내가 무대에 서는 날, 공교롭게도 내 앞 순서는 학교의 스타였던 Y였다. 곧 유학을 앞둔 Y는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을 선택했다. 제목부터 압도적인 그 곡을, Y는 마치 건반 위를 날아다니는 불꽃처럼 연주했다. 휘몰아치는 테크닉과 폭발적인 열정에 객석은 숨을 죽였고, 연주가 끝나자 터질 듯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내가 무대에 올랐다. 손바닥에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내가 준비한 곡은 겨우(?) 모차르트였다.
'초등학생도 치는 이 곡이 너무 초라하게 들리면 어쩌지?'
위축된 마음 탓에 무대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첫 소절을 내딛는 손가락은 미세하게 떨렸다. 하지만 나는 눈을 감고 내가 사랑했던 그 숲길을 떠올렸다. 화려함 대신 정직함을, 과시 대신 순수함을 담아내려 노력했다. 아티큘레이션 하나하나에 숨을 불어넣자 신기하게도 떨림은 멈췄고, 마음은 평온해졌다.
모든 연주가 끝나고 담당 선생님이 무대 앞으로 나오셨다. 객석은 당연히 Y의 이름을 부를 것이라 예상하며 웅성거렸다. 하지만 선생님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뜻밖이었다.
“오늘 평을 하기 전, 다시 한번 들어보고 싶은 연주가 있습니다. 000 앞으로 나오세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당황함에 뺨이 달아오른 나를 향해 선생님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셨다.
“000의 연주는 어린 학생의 순수함 속에서도 섬세한 음악적 언어가 돋보인 훌륭한 연주였습니다. 다시 한번 청해 듣고 싶군요.”
어떻게 다시 연주를 마치고 내려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처음보다 더 뜨거웠던 박수 소리와, 비로소 내 안의 작은 연주자가 기지개를 켜던 그 생경한 감각만이 선명할 뿐이다.
선생님의 그 말 한마디는 내 인생의 나침반이 되었다. 남들보다 더 빠르게, 더 높이 올라가야만 인정받는 세상에서 나는 '나만의 속도'로 걷는 법을 배웠다. 화려한 대곡들 사이에서 내 모차르트가 초라하지 않았던 것처럼, 내 삶 또한 소박하더라도 진실하다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은 어떤 콩쿠르 우승 상장보다 값진 훈장이었다.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지금, 다시 건반 앞에 앉아 K.330을 연주한다. 어린 시절의 맑고 영롱했던 소리는 이제 삶의 굴곡을 지나온 깊은 울림으로 변해 있다.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애잔하게. 고단한 하루의 먼지를 털어내며 모차르트는 변함없이 내게 속삭인다.
"괜찮아, 지금 네 소리 그대로도 충분히 아름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