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아웃

by 솔내음

누군가는 흔적 없이 조용히, 누군가는 "함께해서 행복했습니다"라는 정중한 문장으로, 또 누군가는 화면 가득 붉은색 하트 이모티콘을 남기며 방을 나간다. 'OOO님이 나갔습니다.' 무미건조한 시스템 메시지가 올라올 때마다, 4년 넘게 스마트폰 화면을 뜨겁게 달구던 이름들이 신기루처럼 증발한다.


이제 내 차례다. 하지만 엄지손가락은 '나가기' 버튼 위에서 갈 길을 잃고 허공을 맴돈다. 이 버튼 하나만 누르면 지난 4년 여의 시간이 디지털의 먼지가 되어 사라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는 손가락 대신 앨범을 연다. 그 안엔 피아노 건반 위에서만 머물던 내 정적인 삶에 불쑥 끼어든 '글쓰기'라는 낯선 세계의 파편들이 가득하다. 악보의 콩나물 대가리 대신 투박한 문장들을 다듬던 밤들. 코로나라는 유례없는 긴 터널 속에서도 우리는 매주 화상 화면을 마주하며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 혼자였다면 절대 쓰지 못했을 문장들이 모여 네 권의 책이 되었고, 떨리는 목소리로 독자 앞에 섰던 두 번의 북 콘서트는 내 생애 가장 화려한 무대였다.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건 제주도의 공기다. 대학 시절 엠티 한 번 가보지 못하고, 동아리 활동의 시끌벅적함도 몰랐던 내게 문우들과의 2박 3일은 오십 너머 찾아온 뒤늦은 사춘기 같았다.


날카로운 갯바위 위에 올라가 손에 손을 잡고, 비린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춤을 추던 우리들. 남들이 보면 우스꽝스러웠을 그 몸짓이 그때는 왜 그리 자유로웠을까. 두툼한 오겹살에 소주잔을 부딪치며 "해당화(해마다 당당하고 화려하게)!"를 외치던 밤의 열기, 그리고 일정에 쫓겨 도착한 고등어 횟집에서 "영업 종료"라는 선고를 듣고 낙담하던 순간. 그러다 "포장은 가능하다"는 사장님의 한마디에 마치 로또라도 당첨된 듯 환호하던 그 유치하고도 짜릿했던 절망과 희망의 교차점이 지금도 가슴 한편에 생생한 파동으로 남아있다.



그 기억들을 뒤로하고, 이제는 정말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


."함께 해서 좋았습니다."


차마 다 담지 못한 고마움을 여덟 글자에 꾹꾹 눌러 담아 전송한다. 그리고 마침내 '확인' 버튼을 누른다. 찰나의 순간, 수천 개의 대화와 수백 장의 사진이 오갔던 방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방금까지 존재했던 세계가 단 1초 만에 백지가 되어버린 풍경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문득 두려움이 밀려온다. 내가 언젠가 '세상'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방에서 로그아웃하는 날도 이런 느낌일까.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혹은 이 우주의 목록에서 내 이름 세 글자가 이렇게 흔적 없이 삭제되는 것일까.


대화방이 있던 스마트폰의 빈자리가 유난히 차갑다. 로그아웃은 끝이 아니라, 다시 혼자서 문장을 이어가야 한다는 무거운 신호탄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손끝엔 제주 바다의 짠 바람과 문우들의 온기가 남아있는데, 내 손 안의 화면은 너무도 고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