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각의 섬

요양원에서 생긴 일

by 솔내음

그곳은 시계가 멈춘 섬 같았다. 복도 끝 대형 TV에서는 아이돌 가수들이 현란하게 춤을 추고 있었지만, 거실에 모인 휠체어 위의 사람들 중 누구도 화면을 보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가 가져온 생의 마지막 파편들을 붙잡고 자신만의 세계를 표류 중이었다.


창가 쪽에는 전직 교감이었다는 이 씨가 앉아 있었다. 그는 보이지 않는 교단을 향해 끊임없이 삿대질하며 누군가를 꾸짖고 지시했다. 그의 곁에는 평생 손주들을 업어 키웠다는 박 할머니가 낡은 헝겊 인형을 품에 안고 "우리 아기, 아이고 예뻐라"라며 쉴 새 없이 웅얼거렸다. 교감의 호통과 할머니의 자장가는 한 공간에서 섞였지만, 결코 서로에게 닿지 않는 평행선이었다.



이 구역의 실세는 단연 희재 엄마였다. 한때 부동산계를 주름잡았다던 그녀는 암산 능력이 여전했다. 그녀는 요양원 동료들에게 종이 쪼가리로 만든 '가짜 돈'을 나눠준 뒤, 고스톱판을 벌였다. 돈을 딸 때마다 그녀는 기세등등하게 굴었지만, 판이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 이건 너희들 가져라"하며 전재산(?)을 기부하는 대범함을 보였다.


희재 엄마의 눈은 매서웠다. 면회 온 딸의 코트 원단만 보고도 "그거 이태리산이지? 색깔 참 잘 뽑았네"라며 단번에 알아챘다. 그런 그녀가 최근 가장 기다린 것은 새로 들어온다는 '일본 여자'였다. 자신의 유창한 일본어 실력을 뽐낼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새로 온 여자는 치매가 깊어 한마디 말도 없이 간병인의 뒤를 유령처럼 따라다닐 뿐이었다. 희재 엄마는 혀를 찼다.

"말을 해야 내가 대접을 좀 해주지, 쯧쯧. “



2인실에서는 가끔 비명 섞인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노부부가 함께 입원한 방이었다. 거동이 불편해 침대에 누워만 있는 할아버지를 향해 할머니는 매일 주먹을 휘둘렀다. 젊은 시절, 할아버지의 외도와 방랑이 할머니의 가슴에 응어리진 탓이었다. 할아버지는 피할 곳도 없는 침대 위에서 그 매질을 고스란히 받아냈다. 간병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사람은 말이야, 진짜 멀리 내다보고 살아야 해. 나중에 저렇게 고스란히 돌려받는다고. “



"어서 오세요. 우리 집 전망이 끝내주지요?"

1인실에 머무는 전직 기업 회장은 찾아오는 이들에게 늘 창밖을 가리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가 가리키는 곳은 회색빛 아파트 단지였지만, 그의 눈에는 그 너머로 푸른 바다와 거대한 대교가 펼쳐져 있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은 그의 동문서답에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그는 화려했던 자신의 제국을 요양원 작은 방으로 그대로 옮겨와 살고 있었다.



시간은 공평하게 흐르고, 기억은 더 빨리 증발했다. 교감의 호통은 잦아들었고, 활기차던 희재 엄마의 '가짜 도박판'도 막을 내렸다. 하루 종일 복도를 누비던 일본 여자는 이제 방 안에서 조용히 벽을 응시했다. 신세 한탄을 늘어놓던 할머니의 눈동자 위로 무거운 눈꺼풀이 깜빡거릴 뿐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희재는 생각했다. '인생이란 결국 자기 발로 화장실을 갈 수 있을 때까지만 유효한 것인가.'

그녀는 간병인과 농담처럼 안락사 비용 3천만 원 이야기를 나눴다. 혹여나 숨이 끊어지지 않고 생명만 연장될까 무서워 홍삼은 절대 입에도 대지 않는다는 그녀들의 대화 뒤로 씁쓸한 웃음이 번졌다.




오전에는 부모님의 요양원, 오후에는 손주의 기저귀. 생의 입구와 출구를 하루에도 몇 번씩 오가는 희재의 눈에, 요양원 TV 속 연예인들의 화려한 춤사위는 마치 먼 미래의 환영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다. 모두가 각자의 섬에 갇힌 채, 서서히 수평선 너머로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