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곱 번의 작별

비우면서 채우는 즐거움

by 솔내음

집안 구석구석을 가만히 훑어본다. 그곳에는 몇 년 채 쓰임을 잃은 물건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운동 좀 해야지 하며 큰맘 먹고 들였지만, 이제는 빨래 건조대로 전락한 실내 자전거, 유행이 지나 입기 민망해진 허리가 잘록한 코트와 레이스가 달린 블라우스, 그리고 도대체 어디에 쓰는 것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정체불명의 케이블들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정리하지 못한 채 마음속에 쌓아둔 고민들도 이와 비슷한 모양이 아닐까 싶어 마음이 심란하다.


물건이 넘쳐날수록 마음의 숨구멍은 좁아졌고, 채우는 것에만 급급했던 시간만큼 내 삶의 무게도 위험 수위에 도달해 있었다. 오늘부터 조용히 나만의 약속을 하나 시작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하루 일곱 번의 작별'이다. 거창한 대청소라는 이름으로 집안을 뒤엎는 전쟁이 아니라, 매일 딱 일곱 가지의 불필요한 것들을 골라 세상 밖으로 보내는 연습이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쓸데없는 걱정이 들었다. 오래된 서류, 낡은 영수증 한 장을 집어 들면서도 '혹시 나중에 증빙할 일이 생기면 어쩌지?'라는 터무니없는 불안이 엄습했다. '아깝다'는 집착은 생각보다 끈적한 접착제 같아서, 내 손과 물건 사이를 좀체 떼어놓지 않았다. 먼저 옷장 한가운데에 걸려 있던 레이스 블라우스를 꺼내 들었다. 한때는 이 옷을 입고 거울 앞에 서면 세상에서 가장 근사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하지만 유행은 소리 없이 지나갔고, 이제는 이 옷을 꺼내 몸에 대보는 것조차 왠지 겸연쩍다. ‘언젠가 살이 빠지면’, ‘언젠가 격식 차릴 일이 생기면’이라는 핑계로 옷걸이 한 자리를 내어준 지 벌써 몇 년째다.

그 ‘언젠가’를 기다리며 블라우스를 지키는 동안, 정작 지금의 내가 편하게 입을 옷들은 비좁은 틈새에 구겨져 있었다. 옷장에서 옷을 꺼내며 깨닫는다. 내가 붙잡고 있었던 건 옷감이 아니라, 이 옷이 잘 어울렸던 그 시절의 나였음을.


이제는 어색해진 레이스 장식을 가만히 만져보다가 조용히 접어 쇼핑백에 담았다. 옷걸이 하나가 비워졌을 뿐인데, 꽉 막혔던 숨통이 아주 조금 트이는 기분이다. 옷걸이에서 블라우스를 내려놓으며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옷도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땐 누군가의 눈길 아래서 환하게 빛나고 싶었을 텐데. 주인 잘못 만나 어두컴컴한 옷장 구석에서 몇 년이나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게 한 건 아닐까. 어쩌면 이 옷에게 가장 필요한 건 내 집착이 아니라, 당당하게 밖으로 나가 제 쓰임을 다하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다음 차례는 짙은 색의 무거운 겨울 코트다. 한때는 그 묵직함이 나를 지켜주는 보석 갑옷이라도 되는 양 든든했지만, 이제는 몸을 짓누르는 무게감이 영 마뜩지 않다. 나이가 든다는 건 어쩌면 삶에서 무거운 것들을 하나씩 덜어내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코트를 정성껏 접어 봉투에 담고 나니, 옷장 안에는 가느다란 플라스틱 옷걸이 하나가 덩그러니 남았다.

손가락 끝으로 그 옷걸이를 건드려 보았다. 달랑, 달랑. 오랫동안 무거운 외투를 받치느라 잔뜩 휘어져 있던 옷걸이가 가볍게 몸을 흔들며 맑은 소리를 낸다. 그 경쾌한 울림이 꼭 "이제야 숨을 좀 쉬겠네"라며 기지개를 켜는 소리 같아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옷 한 벌이 빠져나갔을 뿐인데, 꽉 막혀 있던 옷장 틈 사이로 기분 좋은 바람길이 생겼다. 비워진 자리는 결코 비어 있지 않았다. 그곳은 이제 막 고요한 자유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하나둘 물건을 골라내며 비로소 깨달았다. 내가 그토록 움켜쥐고 있었던 건 물건 그 자체가 아니었다. 그것들에 끈적하게 엉겨 붙어 있는 '빛바랜 시절의 조각'과 '오지 않을 날들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었다. 낡은 교과서를 차마 버리지 못했던 건 공부에 열중하던 젊은 날의 나를 아주 잃어버릴까 봐 겁이 나서였고, 작아진 옷을 끝내 품고 있었던 건 다시 예전처럼 날씬해질 거라는 기약 없는 기대를 놓지 못해서였다. 물건을 비우는 일은 결국,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던 나를 현재로 데려오는 일이었다.


쓰레기통으로 향하는 일곱 가지 물건의 뒷모습은 이제 결코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제 몫을 다하고 떠나는 이들의 경쾌한 뒷모습에 가깝다. 물건이 빠져나간 자리마다 답답했던 틈사이로 고여있던 공기가 비로소 흐르기 시작한다.


작별이 거듭될수록 마음 한구석에서 묘한 해방감이 솟았다. 무언가를 비워낸 자리에는 어김없이 기분 좋은 숨구멍이 생겨났다. 물건을 밖으로 내보내는 일은 결국, 그동안 외면해 왔던 '지금의 나'를 가만히 마주하는 일이었다. 많이 가질수록 풍요로운 줄 알았는데, 사실은 덜어낼수록 삶이 더 가볍고 느슨해진다는 이 소박한 진리가 나를 숨 쉬게 한다. 텅 빈 공간이 건네는 고요를 마주하며, 나는 이제야 겨우 자유가 어떤 냄새를 풍기는지 알 것 같다.


오늘도 나는 집안 구석구석을 천천히 응시하며 묻는다. "내일은 또 어떤 것과 기분 좋은 작별을 할까." 빽빽하게 들어찬 물건들이 내뱉는 소음 대신, 비워진 자리가 들려주는 고요한 안부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