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내음 Dec 22. 2021

생각하는 향기

헤밍웨이가 사랑한 쿠바 커피


무엇이든 ‘마지막’이라는 것이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 무심히 흘려보내며 당연하게 여겼던 순간과 공간, 사람에 대해 아쉬움과 그리움이 더해지는 순간이다.      

 

동네 숲길을 지날 때마다 유독 눈길이 가는 카페가 있었다.  벽에 쓰인 독특한 이름과 색다른 외벽의 페인팅이 시선을 사로잡는 곳이었다. 입구가 잘 보이지 않는 구조와 자그마한 창문 아래로 보이는 반 지하의 장소는 혹시 밴드 공연하는 곳인가 하는 호기심만  불러일으킨 채 선뜻 들어가 보지 못하고 있었다.      


붉게 물들기 시작한 나뭇잎 위로 부드러운 햇살이 내리쬐던 가을 오후였다. 동네 산책을 하다 바라본 그 카페의 노란 벽이 투명한 햇살을 받아 더욱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카페 안을 내려다보았다. 작은 창문 사이로 보이는 알록달록한 타일 문양과 향긋한 커피 냄새가 한번 들어와 보라는 듯 나를 유혹했다. 잘 보이지 않는 입구를 찾아 좁고 길쭉한 계단을 내려갔다.


아담한 공간에는 외국 밴드 음악이 은은하게 흐르고. 다양한 색으로 칠해진 벽에는 주인의 안목과 취향이 스며있는 독특한 가구들과 소품들이 공간마다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내가 유럽 어딘가를 여행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찬찬히 둘러보고 나서야 그곳이 쿠바 커피와 디저트를 만드는 카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

쿠바 산 원두를 갈아 만든 하바나 오리지널 커피와 케이크 '플란느'를 주문했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아닌 모카포트로 커피를 만들고 있는 것이 특이했다. 추출 시간이 머신보다 오래 걸리고 번거롭지만 커피 그대로의 맛을 살리기 위해 모카포트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참 지난 후에 몇십 년 전에 만들어진 듯한 작고 소박한 컵에 정성스럽게 직접 따라주는 특별한 쿠바 커피를 마주 할 수 있었다.



천천히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갓 볶아서 내린 신선한 향이 코끝에 맴돌며 단맛, 신맛, 쓴맛의 밸런스가 조화를 이룬 부드럽고 깊은  맛이 입안에 퍼진다.




문득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Irnest Miller Hemingway)가 떠오른다. 쿠바에서 오래 머무르며 집필활동을 한 그는 '생각하는 향기'라는 말로 불리기도 한다는 달콤한 쿠바 커피를 즐겨마셨다고 한다.  


헤밍웨이가 쿠바에서 쓴 소설 <노인과 바다>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커피이야기가 나온다. 고기를 잡으러 나가서 온갖 어려움에 맞서 싸우다 상처 입은 몸으로 돌아온 늙은 어부 ‘산티아고’를 위해 소년 ‘마놀린’이 준비한 것은 양철통에 담긴 진한 '쿠바 커피'였다.  


'소년은 노인이 숨 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노인의 두 손을 보고는 그만 울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커피를 가져오기 위해 살그머니 밖으로 나갔다. 길을 내려가면서 소년은 계속 울었다.  깡통 하나에 커피를 담아달라고 주문했다


“뜨거운 걸로 주세요. 그리고 밀크와 설탕을 많이 넣어 주세요”


소년은 뜨거운 커피가 담긴 깡통을 들고 노인의 오두막으로 올라가서 노인이 잠을 깰 때까지 곁에 앉아 있었다. 노인은 잠이 깰 듯하더니 다시 깊은 잠에 빠졌다. 소년은 커피를 데울 땔감을 빌리러 길을 가로질러 갔다. 마침내 노인이 잠에서 깨어났다.


“이거 드세요",


소년은 커피를 유리잔에 따랐다. 노인은 그것을 받아서 마셨다,


"마눌린, 내가 그놈들한테 지고 말았다."

"그래도 그 고기한테 지신 건 아니잖아요. 그 고기는 잡았어요."


_—-<노인과 바다> 중에서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왔다. 그 카페가 여러 가지 사정으로 문을 닫는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문 닫기 전에 꼭 가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조급해진다.


영업 마지막 날, 눈을 뜨자마자 개장시간에 맞춰서 카페로 향한다 ‘오늘은 무얼 마실까’ 고민하다 카페 시또(cafecito)를 주문한다. 쿠바에선 마시자마자 정신 차리게 되는 wake up 커피로 불린다는, 진하고 달달한 맛이다.


달달하고 쌉싸름한 '생각하는 향기'를 음미하며 바깥 풍경을 바라본다. 창밖에는 소리 없이 흰 눈이 소복소복 쌓이고 한 해의 끄트머리 달, 카페의 마지막 날 오후 시간이 느릿느릿 흐르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 그래요, 복동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