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상이 전적으로 루퍼트를 돌보는 것으로 시작되고 마무리된 지 어느덧 한 달이 넘었다. 퇴원한 지 정확히 한 달 째니까 말이다. 2월 22일에 집에 왔고 오늘이 3월 22일... 차가운 밤공기 마시며, 담요에 둘둘 싸여 루퍼트를 집에 데리고 오던 2월의 밤은 어느덧 과거가 되어버렸다. 그날 루퍼트의 심장과 내 심장은 쿵쾅쿵쾅, 서로의 심장박동 소리가 부딪히며 설렘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던 그날 밤이 이제는 머나먼 일처럼 느껴진다.
그날 이후로 루퍼트는 좋아졌다 나빠졌다가를 반복했고, 최근에는 이뇨제의 양도 조금씩 줄여가는 치료를 잘 버티고 있다. 건사료도 잘 먹었는데, 지난번 병원 방문 때 받은 혈액검사와 방사선 촬영이 꽤나 부담스러웠던지 식욕을 좀 잃은 상태다. 그렇게 좋아하던 간 맛 페이스트도 안 먹고, 사료도 입에 안 대고 있다. 또다시 액상사료와 통조림을 갈아서, 주사기 강급을 시작했다. 밥을 먹이는 게 이렇게 거사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루퍼트가 잘 먹는 농도를 겨우 찾아 천천히 먹이면서, 달래주기도 하고 몸부림 치면 노래를 불러주며 흥분을 가라앉혀가며 밥을 주고 있다.
밥을 거부하다가 화를 내고, 그러다 다시 흥분상태에 빠져 폐수종이 올 지도 모르니, 내가 조심할 수 밖에.
정말 한 달 내내, 루퍼트는 현관문 앞에서 나에게 보란 듯이 눕는 경우가 많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가자고 시위를 하는 것이다. 공기는 차고, 의사 말로는 아직 밖에 나가게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네가 나가고 싶어 해도 내 마음대로 데려나갈 수는 없지 않니.
하지만 내 방 창문 앞에 앙상했던 개나리에 어느새 싹이 올라왔고, 노랗게 꽃봉오리를 터트리기 직전이더라, 봄이더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봄이 성큼 다가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지, 햇빛이 따스하니 공원 벤치에 잠깐 앉아서 볕을 쐬고 오는 것도 네 마음을 치유해 줄 것이다. 그간 얼마나 답답했을까!
그래서 오늘은 루퍼트를 데리고 집 앞의 공원엘 나갔다. 걸어서 1~2분 거리의 공원이라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게 다녀올 수 있었다. 루퍼트는 냄새를 콩콩콩 맡더니 밝은 봄 햇살에 눈을 가늘게 뜨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걷고 싶었던 모양인데, 아직은 산책까지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아 그냥 앉게만 했다.
나도 루퍼트가 아프고 난 이후, 처음으로 한 외출이었다. 첫 외출이 녀석과 함께라니, 사실 너무나 행복한 일 아닌가. 하늘도 파랗고, 벚나무 가지에 작게 올라온 꽃봉오리들. 시선을 조금 옆으로 틀어보니, 산수유나무에 이미 노오랗게 꽃이 피어있더라. 산수유 꽃이 수북하게 핀 구례의 어느 마을을 가려했건만 십 년이 지나도 그곳엔 가지 못하고 있네, 그러나 이렇게 집 앞 공원 산수유 두 그루에 핀 저 꽃들을 보아하니 진짜 봄이 왔구나 싶어서, 내 마음과 루퍼트의 건강에도 봄이 오는 것인가 싶어서 어쩐지 설레는 마음 가득 싣고 집으로 돌아온 외출이었다.
내일 또 병원에 가서 고된 검사를 받고, 네가 얼마만큼 또 투정을 부릴지는 모르겠다만 내 곁에 무사히 남아있어주기만 한다면 모든 심술은 다 받아줄게.
물론 너의 건강이 이전과 같진 않을 것이지만 달라질 우리의 일상엔 우리 집 창문 앞에 개나리가 만개할 거라는 사실을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것처럼 언제나 축복이 가득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