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잘린송 Apr 21. 2022

양가적 양면성

시간은 화살처럼 속히 간다는 말이 떠오른다. 어느덧 4월, 그것도 21일, 곧 5월. 눈 깜짝할 사이에 꽃은 피다 졌고 봄은 이미 떠났다. 아직 5월도 안되었는데 벌써 여름 같다. 이번 날씨와 금방 지는 꽃을 가지고 사람들은 지구 온난화와 기후 위기를 이야기하더라. 나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5월 중순은 되어야 반팔 입고 다니는데.


그동안 글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루퍼트 간병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루퍼트는 이뇨제를 줄이는 데 성공했고, 하루 4번 먹던 심장약을 3번으로 줄이는데도 성공했다. 병원에서는 루퍼트를 보고 기적이라며, 이제 다른 동물들의 생명을 어지간해서는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하게 했다고 한다. 하긴, 루퍼트는 안락사 직전까지 갔었다. 그런데 지금 두 달째, 물론 나의 도움 없이는 힘들겠지만 꽤 괜찮은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다.

대신 나는 나의 시간을 온전히 루퍼트 위주로 보내고 있다. 외출은 30분 이상 할 수 없다. 루퍼트가 혼자 있다가 갑작스럽게 안 좋아질 수도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있기 때문이다. 지금 두 달째 칩거 중이다. 처음 한 달은 병원엘 가는 것 이외엔 나가지 못했었다. 녀석을 데리고 나가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 호흡수가 좋아지고, 더 이상 폐수종이 오지 않자 루퍼트가 밖에 나가자고 졸라대더라. 집 앞 공원이 걸어서 3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기에, 만약 응급 상황이 생겨도 집으로 바로 올 수가 있다. 그래서 루퍼트를 따뜻한 옷으로 꽁꽁 싸매고 공원엘 갔다. 마침 봄이 온 지라, 개나리와 매화꽃이 푸른 하늘 아래 하늘 거리던 아침이었다. 오랜만에 나도 햇살을 쬘 수 있어서 좋았다. 봄이구나. 공원 벤치에 앉아 제법 따스한 공기 마시며 코를 킁킁거리던 루퍼트는 행복해 보였다. 이렇게 좋은 세상 아직은 떠날 때가 아니라는 듯, 그 순간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을 즐겼다. 그게 우리의 첫 외출이었다.


그 후엔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루퍼트를 안고 공원엘 나간다. 이제 바닥에 내려놓으면 몇 발자국 걸을 줄도 안다. 그 전에는 절대로 자기를 내려놓지 말라고, 마치 멘붕이 온다는 것처럼 바들바들 떨었었는데 말이다. 그만큼 몸이 좋아지고 있으니, 마음도 편안해지는 것일까.


털이 너무 많이 빠졌고, 목욕을 그 전처럼 자주 시키지 못해 늘 꼬질꼬질해 있지만 그래도 내 눈엔 귀엽고 멋진 강아지 루퍼트인걸.


외부인을 만나지 못하고 집에만 있다 보니, 가끔 걸려오는 전화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자주는 아니지만 밖에서 만날 수 없어 집으로 찾아와 이것저것 챙겨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너무 고맙다. 사실 루퍼트 생각하느라 외로울 틈이 없었지만 그 크기가 꽤 컸던 모양이다. 이전 같으면 마음이 불안하거나 고독하거나 무료해지면 작업을 하루 종일 하면서 그런 감정들을 비워낼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작업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 열심히 했고, 얼마 전 싱글도 냈으니 그만하면 열심히 한 거지. 휴가 중이라 생각하자고 위안하고는 있다. 게다가 루퍼트가 내겐 더 소중하니까. 간병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한다.


하지만 희망을 어도, 포기해도  되는  마음 때문일까,  어쩐지 대범해진  같기도 하고. 야위어진 루퍼트가 자는 모습을 보면 , 기쁘기도 하면서 슬프기도 하고.

지금  상황이 행복이라 해도 여기서  불행해지고 싶진 않더라.


작가의 이전글 어느새 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