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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린송 Dec 30. 2020

12월의 마지막 이브.

12월 31일, 연말의 이브. 2020년도의 마지막 이브.


크리스마스가 지났다. 개인적으로 크리스마스를 전/후로는 존재하지 않는 시간을 살아가는 기분이 든다. 그 시간은 사라져야 할 시간도 아니고, 살아가야 할 시간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새해라는 새로운 시간이 온다는 것은 달력을 한 장 넘기면 숫자가 바뀌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새로운 에너지가 몰려오는 기간이다. 그래서 나는 12월 한 중순부터 1월 1일까지는 그 에너지를 받아들이느라 보름 정도를 현실 밖에서 살아야 한다. 물론 정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상당히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데, 아마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초현실적 시간' 이라기보다는, '존재해야 하는 시간을 향한 질주를 기다리는 공백 기간'이라고 보고 싶다. 말이 너무 장황하고 어려웠나. 한마디로 이야기해서 그 기간 동안은 아무것도 못한다는 말이었다. 

 

2020년, 정말 열심히 살았다. 무엇보다 한국말 공부도 많이 했고, 글쓰기 연습도 많이 해서 이렇게 브런치 작가도 되었다.


또 작업적 고민을 많이 한 해였다. 내가 올 한 해 배운 것은 '그냥 자연스럽게 나 자신을 시간의 흐름에 유영하도록 내버려 두기' 다. 

그리고 내가 작가가 되었을 때, 내 작업은 적어도 남들과 같은 것은 하지 않아야겠다는 초심을 다시 떠올렸다. 

한동안 남들과 같은 것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힘들고 외로워서, 남들 하는 것을 하려고 시도했으나 그것은 내 것이 아닌 것을. 


작업에 대한 고민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나다운 것'을 해야 고민다운 고민을 할 수 있게 된다. 


남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지만 사실 동시대에 발맞춰 가는 태도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현실에 뒤쳐지거나, 너무 앞서갈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나는 앞서가는 것이 구닥다리인 상태보다 더 나은 것 같다. 앞서가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언젠가 빛을 보게 되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시대를 앞선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임을 깨달아야 한다. 


많은 걱정과 고민도 쓸모 있게 해야 작업이 발전되는 것이다. 나는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자신 안에 갇혀서, '나의 천재성을 이해 못하는 이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생각에 빠져들게 되면 세상과 스스로에게 쓸모없는 질문들을 하기 마련이다. 방향성도 없이 환멸만 가득 차 있는데, 올바른 사고가 가능할 턱이 없지 않나. 인간적 발전이 결코 이루어질 수가 없는 상태에서 작업적 고민을 해 봐야 소용없다는 것이다. 결국 작업의 완성은 인간적 성장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성공이라는 것? 작가로서 성공한다는 것은 이름이 알려지거나, 작품이 유명해지거나, 그래서 전시를 여기저기서 많이 하는 것 이겠지만, 사실 내가 바라는 성공은 그것이 아니다.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예술이건, 철학이건, 사상과 이념을 벗어나 곧 내가 내 안에서 자유로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과거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작업적 성과가 전시로 연결되었다고 생각을 했기 때문일까? 전시 공모에 떨어지면 기분이 더럽고, 실패했다는 생각이 자주 들곤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내가 하고 있는 것은 기존의 미술계에서 원하는 것이 아니다. 원하는 것을 하지 않으면서, 안 붙었다고 우는소리 내는 내가 이상한 거였다.  

나의 생각과 내 조형적/청각적 결과물들은 지금 어딘가에 속한 곳은 없다 할 지라도 향후, 사람들이 동시대의 미적 감각에 질리게 되면 그때 나에게로 올 것이다라는 믿음이 있다. 그 믿음이 나를 자유롭게 했다. 그 믿음은 내가 하는 작업에 대한 확신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더 내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시점에서, 나는 성공했다고 자신한다. 


난 남들을 앞서간 것이 아니라, 그냥 방향이 조금 다를 뿐이고 남들보다 인지도는 없지만 삼류는 아니다. 



2020년, 꽤 멋진 한 해였다. 

2021년에도 멋진 시간을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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