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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린송 Jan 06. 2021

Untitled

오늘은 머리를 쓰면서 글을 쓰고 싶지 않다. 억지로 쥐어짜듯이 글을 쓰는 건 글도 엉망일 테지.

그래서 내가 잘하는, 의식의 흐름대로 아무 말대 잔치를 할 것이다.

 


오늘이 1월 6일이지, 어제부터 온 몸이 쑤시더니 마치 여름쯤 장마 크게 올 적에 몸살 나듯이 힘든 거다.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고 10시가 넘어서야 느지막이 일어나서, 겨우겨우 움직였다. 카메라 구경을 하고 싶어 카메라 매장엘 가보려고 옷을 다 갖추어 입고 문 밖을 나서기도 했지만,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다. 밖에 나간 지 10초도 안돼서 바로 들어온 거다.

절대로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작은 것 하나하나 수행해 갔다. 이런 날엔 목표가 크거나 할 일을 많이 정해놓으면 손도 못 대고 시간을 낭비하기 일쑤다. 그래서 운동 1분만 하자, 하면서 10분으로 늘려갔고, 밥도 정말 겨우겨우 해 먹었다. 작업은 오늘 당연히 못했다.


강아지를 목욕시키고 나도 따뜻한 물에 샤워를 했다. 물이 뜨끈뜨끈하니 피로가 싹 가시더라. 어쩐지 그 순간만큼의 내 기분은 일본 삿포로 어디에 있는 온센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설국이 눈 앞에 펼쳐진 노천탕, 그런 데서 몸을 담그고 있는 상상을 하며.


그러고 나서 세탁기를 돌리려고 베란다엘 나갔는데 창 밖에 뭔가 사락사락 움직이는 거다. 뭐지 하고 보니까 하얀 점 같은 것들이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 눈이구나. 오늘 정말 눈 오는 날 맞았구나. 그래서 내가 이렇게 힘들었구나!


왠지 오랜 시간을 공들여 작업한 것들이 결실을 맺는 기분이 들었다. 앓던 이가 빠진 듯, 홀가분해졌다. 이렇게 눈 앞에 내 우울함의 원인이 딱 놓여 있으니. 반갑기도 하고, 뭔가 통쾌하기도 하고.


함박눈을 마지막으로 본 건 2007년 일본 다이깐 야마 어느 카페에서 언니와 배 타르트와 커피를 마실 때였다. 눈이 엄청 왔고, 나와 언니는 우산도 없이 눈 오는 길거리를 걸었다. 그 눈은 꽤 촉촉한 눈이어서, 옷이  축축하게 젖 게하는 눈이었다.

그날의 눈은 쌓이지 않았지만 도쿄치고는 꽤 많이 온 날이었다고 한다.  그때 이후로는 이런 폭설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왠지 레드와인 한잔이 먹고 싶고, 어쩐지 사진도 찍고 싶어 져서 밖으로 나갔다.


카메라를 뭘 살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오늘 눈 사진을 찍고 나니 내가 뭘 원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나는 사실 비싼 장비를 밖에 들고나갈 자신이 없다. 이렇게 눈이 오면, 카메라가 상하기 때문이다. 불안해서 작업이 잘 될 것 같지가 않아.


역시 방수 카메라도 같이 사야겠어.

편하게 쓰는 거랑 영상용 장비로 쓸 것 이렇게.


어쩐지 오늘의 눈은 고민 이모저모를 들어준 셈이네.

반가워.


이 눈을 뚫고 와인을 사러 나갔다.
눈이 많이 와서, 사고가 난 모양이다.


골목길 소복소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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