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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린송 Jan 27. 2022

문어에서 자본세까지

연체동물처럼 똑똑한 바다생명은 없다 하여 되도록이면 문어나 낙지 따위를 먹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간혹 본가에 갈 때마다 부모님이 반찬으로 챙겨주시는 것이 아닌 이상 먹을 기회를 만들지도 않는다. 어느 날 문어와 관련된 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녀석이 퍼즐도 맞추고, 물탱크의 손잡이를 열고 탈출하는 장면이었다. 훈련이 잘 된 강아지를 보는 듯 한 기분이었고 그 영상을 본 후, 다시는 문어나 낙지를 먹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그런데 요 며칠, 집에서 밥반찬으로 먹으라고 싸주신 문어숙회를 먹게 되었다. 문어에 대한 죄책감과 동시에 미식을 즐길 수 있어서 행복감도 들었다. 육류를 먹으면 늘 느끼는 이 감정. 이렇게까지 남의 살을 발라먹고 살아야 하는 걸까 의문이 들면서도, 채식이 내 체질에는 맞지 않아 꽤 고생했던 적도 있어 어쩔 수 없이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은 육류 섭취를 해야 하는 내가 참, 뭐라고. 이 몸뚱이가 뭐라고 나 하나 살자고 남의 생명 희생시켜가며 살아야 하나.


신문엔 또 280억 년 전에 생성된 바다생물 화석을 발견했다고 나오고. 자세히 보니 오늘 먹은 문어 녀석들의 조상이로군. 머리엔 눈이 여럿 달린 듯 하지만 영락없이 외계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고 다리는 바다나리 촉수 같았다. 그걸 보니 입맛이 뚝 떨어졌다. 내가 먹고 있는 것의 조상이라는 생각에서도 그러하고, 어쩌면 화석 속 주인공들은 당시 지구에서 나름의 문명을 이루고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게다가 옛날 판타지 소설 삽화에 실린 화성인의 외모를 너무 닮기도 했고...어쩐지 하나의 지성을 가진 생명체를 내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음식 취급이나 하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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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억의 시간이 지난 지구를 상상하자면 인간은 멸종했을 테고, 인간보다 더 똑똑한 지성체가 몇 세대를 걸쳐 진화해 있을 것이다. 종이 다르다 해도 자신의 기원을 궁금해하는 것은 인간과 같겠지. 그들은 지구의 지층을 분석하고 연대를 측정하여 지구의 나이를 계산하는 작업을 분명할 것이다. 그들은 지금 시대를 이렇게 분석할 테지




'... 약 280억 년 전 인간이라는 종이 등장한 이래 만년이 채 안되어 산업화라는 것을 진행했고 그것이 이례적인 지구 대멸종을 불러일으켰다. 주거단지와 공장 건설을 위해 산림을 파괴한 것과 과다 생산된 이산화탄소가 주요 원인이다. 당시 자본세의 지층을 분석하면 탄소, 질소, 플라스틱, 그리고 동물뼈가 주를 이룬다. 모두 과도한 식량 생산을 했다는 증거다.

이 시대에 생성된 인간 화석을 살펴보면 다른 포유류에 비해 생분해되지 않은 듯하다. 아마도 녀석들이 먹었던 '가공음식'에 첨가된 방부제 때문이 아닐까 추측된다. 인간이라는 녀석들은 문명을 이루었지만 그것이 오래가지 못했던 이유는 아마도 스스로를 자연이 아니라 신이라 여겼던 오만함일지도 모른다. 지구 대멸종 이후 억겁의 세월이 지나 지구는 스스로를 치유했고 이제 겨우 생명이 살 수 있는 환경이 주어졌다. 우리가 자연 앞에서 겸손해야 하는 이유를 지층에서 발견했다. 우리는 결국 자연의 일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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