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문득 공기의 색은 겨울의 투명함에서 군청색으로 옮겨간 것을 느꼈다.
겨울은 이제 떠나간 것이다.
어쩐지 오렌지가 잘 어울리는 봄, 오렌지의 향인지 과육의 질감인지 아니면 과즙의 맛인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 자체는 군청색 공기와 어울린다.
봄은 생동감 있고 생명이 되살아나는 계절이지만 봄처럼 우울한 계절이 없다.
봄의 색은 안정적이지 못한 검은색이다.
봄의 색은 불안정한 대기상태를 닮았다. 그럼에도 봄이 아름다운 것은 그 불안정한 힘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지속하게 하는 에너지의 원천이기 때문인 듯.
약 10일 만에 외출을 해 보았다. 집에 처박혀서 작업만 했다. 어차피 날도 너무 추웠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기엔 애기가 너무 노견이라 그런 날씨엔 나가지 않는 게 좋아서 말이다. 오랜만에 늦잠도 자고, 그러다 새벽에 깨면 다시 작업하고, 다시 잠이 오면 또 잠에 들고... 하루 종일 세수도 안 하고 그렇게 편하게 며칠 보내고 나니, 군청색 공기가 감도는 봄이로구나.
반가운 마음에 공원 한 바퀴를 돌다가 물오른 목련나무도 만났고, 오랜만에 동네 아주머니도 마주쳤다. 공원에서 강아지 산책하다 만난 분인데, 실버 푸들을 키우신다.
공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자동차가 빵-하더니, 나를 막 누가 부르는 것이다. 주변엔 차 밖에 없었는데 혹시 몰라 차 문이 열린 너머를 보니, 실버 푸들의 그분이었다. 이렇게 반가워하시는 모습을 보고 왠지 쑥스럽기도 하고, 최근 들어 모가 났던 마음이 수그러들었지 뭔가.
그녀는 내 이름을 모르고 우리 개 이름을 알아서 나를 루루라고 부른다. 나도 그녀의 이름을 몰라 그 집 개 이름을 부른다. 한국사람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던데 그게 난 여전히 어색하다. 다음에 마주치게 되면 그땐 내 이름을 알려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