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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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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i Jun 25. 2020

한드에서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면 생기는 일

드라마 <꼰대인턴>의 오동근 대리(고건한 분)는 세 쌍둥이의 아빠이자 식품대기업 준수식품 최초로 남성 육아휴직을 쓴 ‘전설의 육아대디'다. 그는 육아휴직을 가는 여성 동료에게 잊지 않고 선물을 하고, 퇴근길에 그 누구보다 행복한 표정으로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한다. 평일에 열리는 아이들의 유치원 재롱잔치 일정도 꼼꼼하게 챙긴다. 바뀌고 있다지만 여전히 육아가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그는 쉽게 찾아보기 드문 아빠다.


퇴근길에 아이들과 영상통화를 하는 오동근 대리


동시에 그는 대단한 ‘밉상' 캐릭터이기도 하다. 오피스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부에 능하고 후배에게 일 떠넘기기 좋아하며 후배의 공을 자신의 것인 양 가로채는 선배. 드라마 <미생> 속 한석율(변요한 분)의 선배인 성대리(태인호 분)를 코미디 드라마에 출연시킨다면 오동근 대리일 것 같다. 그런데 그에게는 다른 드라마 속 ‘빌런 선배’들과는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소위 ‘여성적'이고 ‘아줌마답다'고 여겨지는 특징들이 그에게는 추가된다. (물론 여기서 ‘여성적'이라 여겨지는 특징들은 여성에 대한 편견을 강화하는 성별 고정관념이다.) 수다스럽고, 남을 헐뜯기 좋아하며, 다른 사람들의 외모와 옷차림을 하나하나 평가한다.


나는 이 조합, ‘육아대디'와 ‘여성적’ 특징의 조합이 조금 수상하다. 육아휴직을 다녀온 아빠 캐릭터와 ‘아줌마답다' 여겨지는 것들의 조합이 단순한 우연일까 싶다. 육아휴직을 다녀온 남성을 ‘남자답지 못하다' 여기는 관습적 사고방식이 과장된 형태로 반영되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러한 관습적 사고는 조금 게으르다. 오동근 대리가 일개 조연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런 캐릭터 설정은 섬세하지 못하다.


드라마 속 오동근 대리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남성이라고 해서 그가 무결한 인물로 그려져야 할 이유는 없다. 대단히 유능하고 멋진 선배 역할을 맡아야 할 필요도 없다. 그것은 ‘육아대디'를 지나치게 특별한 사람으로 묘사하고 신격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을 판타지 속에 등장하는 유니콘으로, 현실에는 없을 것만 같은 존재로 그려내는 것은 그들을 편견 어린 시선으로 그려내는 것만큼이나 나쁘다.


인턴에게 자신의 업무를 떠넘기는 오동근 대리


그러나 미디어는 현실을 반영할 뿐 아니라 현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남성의 육아휴직이 많이 늘고 있다지만 여전히 전체 육아휴직자 5명 중 1명만이 남성이다. 한국의 합계출생률은 0.98명으로 1명이 채 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미디어가 육아휴직을 다녀온 남성을 묘사하는 방식은 어때야 할까? 드라마는 분명 윤리지침서가 아니다. 그럼에도 더 나은 현실을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다면 미디어는 그만큼 기존의 관습을 뛰어넘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나는 오동근 대리가 여전히 밉상에, 무능한 선배로 묘사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오피스물이 재밌어지려면 그런 선배 역할의 캐릭터가 한 명쯤은 필요한 것 같다. 다만 그에게 덧씌워진 ‘여성적인’ 특징들은 삭제되어도 좋을 것이다. 그가 덜 수다스럽고 남을 덜 헐뜯으며 남의 차림새에 관심을 가질 시간에 자신을 돌아보는 캐릭터면 좋겠다. 그가 육아휴직을 다녀온 '여성스런' 남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편견 어린 특징을 사용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이상하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굳이 ‘여성스럽지’ 않더라도, 아이들의 성장에 관심을 가지고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아빠들이 필요하다. 오동근 대리는 준수식품 정도 되는 대기업에 다니니까 육아휴직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와 같은 선택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조차 없는 아빠들이 수두룩하다. 미디어가 아빠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회사 자체를 만들지는 못하더라도,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데는 분명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이다. <꼰대인턴>을 방영하는 MBC는 공영방송이다. 이 점에 있어서 조금 더 섬세하고 부지런히 움직여 주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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