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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M씽크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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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si Aug 09. 2020

아침 드라마의 설정과 SF가 만나면

SF8 3화 <우주인 조안> 리뷰

*본 글에는 <우주인 조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상이 미세먼지로 뒤덮인다면 어떻게 될까? 누군가는 이미 그렇지 않으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주인 조안>의 가정은 좀 더 극단적이다. 세상이 미세먼지로 뒤덮인다면? 그 미세먼지 때문에 누군가는 30살까지밖에 살지 못한다면? 그리고 누군가는 비싼 항체 주사를 맞고 100살까지 살 수 있다면? 비싼 항체 주사를 맞는 사람들은 당연히 돈 많은 부자들이다. 이 근미래에서는 미세먼지 항체 주사를 맞았느냐의 여부에 따라 사람들을 C와 N 즉 Clean과 No Clean으로 나눈다.


대학생 이오(최성은 분)는 20년 넘게 자신이 C 즉 Clean으로 분류된다고 믿고 살아왔던 사람이다. 그건 자신에게 80년의 수명과 창창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학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그는 사실 자신이 N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의 부모가 20여년 전 갓난쟁이인 그를 위해 구매한 항체 주사는, 병원 측의 착오로 다른 아이에게 접종되었다. 그리고 이오도 이오의 부모도 그것을 모른 채 20년 넘게 살아온 것이다. 이오는 자신 대신 항체 주사를 맞아 C로 살아가고 있는, 그러나 자신이 C인 줄 모른 채 N이라 생각하고 살고 있는 사람을 찾기로 결심한다.


자신에게 항체가 없음을 알게 된 이오는 N들이 입는 미세먼지 청정복을 입게 된다


그런데 이 설정은 어딘가 익숙하다. 부잣집 아이와 가난한 집 아이가 병원에서 뒤바뀌어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는, 한국 아침 드라마나 일일연속극의 향기가 난다. 그러니까 <우주인 조안>은 미래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그 설정 자체는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클리셰를 따른다. 차이가 있다면 <우주인 조안>의 이오는 자신이 실은 흙수저라는 걸 알게 됐지만, 원래의 금수저 자리를 탈환할 수는 없다. 그 자리를 탈환하기 위한 복수극 같은 것을 펼칠 수도 없다. 정확히 말하면 펼쳐봤자 소용이 없다. 항체 주사는 생후 6개월 안에 맞아야만 효과가 있으니까.


그럼에도 나는 이오가 자신 대신 C로 살고 있는 사람을 찾겠다고 결심했을 때, 당연히 칼 하나쯤 차고 출발할 줄 알았다. 우선은 병원에 가서 책임자를 색출하고 그 사람을 죽이지는 않을지언정 대체 왜 그랬냐며 고래고래 소리 한 번쯤은 질러줄 줄 알았다. 자신 대신 C로 살고 있는 사람에게 찾아가서도 눈물 한바탕 쏟을 줄 알았다. 그런 클리셰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그런 식으로밖에 이야기를 상상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오는 그런 일에는 관심이 없다.


오히려 이오는 자신 대신 주사를 맞은 조안(김보라 분)에게 삶을 선물했다고 느끼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빛나게 살고 있는 조안의 모습을 사랑하고, 그런 조안의 삶이 앞으로 80년 더 영속된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조안에게 네가 C라는 사실을 알리지는 않지만,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조안이 N으로 살아가는 지금처럼 순간에 충실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름답게 80년을 더 살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오는 자유롭게 사는 조안을 동경하고 사랑하게 된다


나는 <우주인 조안>을 보며 무언가를 뛰어 넘는 상상력에 대해 생각했다. 기존의 클리셰를 가뿐히 뛰어넘어 버리는 상상력. 현실이 천박할지라도 그 속에서 아름다운 것을 길어올리는 상상력. SF작가인 듀나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이미 다 해버리는 바람에 그 말을 잠시 인용하고 싶다.


“아무리 우리가 천박한 나라에 산다고 해도 여기엔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오로지 천박하기만 한 사람들만 사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예술가로서 그런 사람들만 나오는 이야기를 만드는 건 충분히 가능하다. 하지만 모든 예술가들이 그런 사람들에만 집중한다면 그건 뭔가 이상하다. (중략) 그건 솔직하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뜻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 상상력은 세상을 바꾸는 상상력과 연결된다. 모두가 좁아 터진 상상력 안에서 천박한 솔직함에만 집중한다면 과연 세상이 바뀔까?” (엔터미디어, “<캐롤>, 한국영화도 이런 품위 있는 캐릭터가 필요하다”, 듀나)


기존의 클리셰를 뛰어넘는 상상력이든, 현실을 부수는 상상력이든, 상상력을 펼치는 데 관해서라면 SF만큼 이를 잘할 수 있는 장르도 없다. SF는 상상력을 말 그대로 ‘우주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 장르니까 말이다.


그런 점에서 MBC의 시도 <SF8>이 반갑다.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모르는 지금, 미세먼지와 전염병이 이미 우리 눈앞에 닥쳐있는 지금, C와 N으로 나뉘어 사는 세상이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지금 이 시점에 필요한 드라마가 나왔다. <우주인 조안>을 보며, 나는 디스토피아 속에서도 그 너머를 상상하는 법을 조금은 배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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