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 앉아 있는 낯선 여자가 자꾸만 나를 노려본다.
미용실에 왔다. 평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드문드문하다. 주말엔 항상 만원이었는데. 소파에 앉자마자 막내로 보이는 직원이 다가와 친절하게 묻는다.
“혹시, 예약하셨나요?”
“아뇨.”
“앉아서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하면서 잡지책을 건넨다. 사람도 없어 보이는데. 예약을 하고 왔어야 하나? 아니나 다를까 5분도 안 돼서 미용실 가운을 들고 온다.
“머리 어떻게 해드릴까요?”
“짧게 자르려고요.”
“파마도 하시나요?”
“그래야겠죠?”
막내 직원이 내 가운 허리끈을 질끈 묶더니 내 가방을 들고 총총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얼굴을 보아하니 20살이 되었을까? 내 가운 주머니에 열쇠를 쏙 넣더니 상큼하게 미소 짓는다. 그 미소가 참 예쁘다. 예전에 엄마가 그랬다. 너희 나이 때는 아무것도 안 해도 예쁘다고. 그냥 웃기만 해도 예쁘다고. 그땐 몰랐는데, 서른을 훌쩍 넘고 나니 엄마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나이 든 사람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풋풋한 젊음 자체가 그냥 예뻐 보이는 것이다.
“어떻게 평일 낮에 다 오셨어요? 휴가예요?”
신기했다. 나를 알아보다니. 자주 와야 1년에 2번 오는 손님의 얼굴과 패턴을 기억하다니. 역시 베테랑이다. 하지만, 눈썰미 좋은 헤어디자이너의 질문에 대답을 해 줄 수는 없었다. 상황도 상황이었지만, 그렇게 말을 터놓으면 또 다른 질문이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미용실에 오는 걸 굉장히 싫어한다. 일단 머리를 하는 것 자체가 내겐 굉장한 모험이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바꾸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미용실을 다녀온 내 모습이 낯설고 어색해서 며칠 동안 거울도 제대로 못 보는 사람이다. 헤어 도구들에 의해 괴기스럽게 변한 내 모습을 커다란 거울로 몇 시간 동안 지켜봐야 하는 일도 참기 힘들다. 거기에 직원들의 어색한 질문이나 이야기는 나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다. 미용실은 나 같은 사람에게 정말 오래 머물고 싶지 않은 곳이다.
“머리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짧게 잘라주세요!”
“어느 정도로?”
“머리가 어깨에 닿지 않을 정도로. 꽁지 묵을 수 있을 정도까지만.”
“아, 네. 근데, 갑자기 머리는 왜 잘라요? 오래 길렀던 머리 같은데.”
“그냥, 머리가 무거워서요.”
다행히 헤어디자이너는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하얀 턱받침 같은 가운을 다시 입히고 헤어디자이너가 자신의 도구들을 챙기기 시작한다. 내 두상과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돌려 보며 디자인에 들어가는 눈치다. 눈을 질끈 감는다. 마치 화살 앞에 서 있는 과녁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어느새 헤어디자이너의 섬뜩한 가위질 소리가 들린다. 가위질 소리가 이렇게 소름 돋는 소리였는지 처음 알았다. 싹둑싹둑. 그 소리와 함께 내 어깨 위에 얹혀 있던 짐들이 뚝뚝 떨어져 나간다.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왠지 아프다. 늦가을 떨어지는 낙엽을 보는 것처럼.
“이 정도면 될까요?”
헤어디자이너의 말에 실눈을 떠본다. 내 어깨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던 머리카락들이 사라졌다. 마음에 드는지 안 드는지 모르겠지만, 반사적으로 그냥 고개를 끄덕인다. 헤어디자이너는 만족스럽다는 듯 다시 화려한 가위질을 자랑하며 머리를 다듬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묘한 기분이 든다. 거울 앞에 앉아 있는 낯선 여자가 자꾸만 나를 노려본다.
“염색은 안 하실 건가요?”
“네."
"그럼, 파마하면서 영양제만 추가해 드릴게요. “
헤어디자이너는 막내 직원에게 파마 준비를 시킨다. 꽃처럼 예쁘던 막내 직원이 도구들을 챙겨 와 파마 준비를 한다. 어느새 헤어디자이너는 다른 손님과 대화중이다. 파마 준비가 끝난 막내 직원이 머리를 자르기 위해 씌웠던 하얀 가운을 풀더니 스펀지로 남아 있던 머리카락들을 털어 낸다. 무심코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바닥에 뒹굴고 있는 머리카락 뭉치들을 발견한다. 방금 전까지 나와 다르지 않았던 내 머리카락이다. 순간, 울컥한 마음이 들더니 눈동자 뒤편에 숨어 있는 눈물이 자꾸만 앞으로 밀려 나온다. 눈을 감아도 소용없다. 어느새 나는 눈물을 머리카락처럼 뚝뚝 흘리고 앉아 있다.
“어머, 괜찮으세요?”
내 머리카락을 빗자루로 쓸던 막내 직원이 깜짝 놀라 내게 묻는다. 머리카락 때문이라고,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저 머리카락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가 없다. 내 걱정을 하면서도 직업적 소명의식이 뚜렷한 막내 직원의 빗자루 질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기어코 커다란 쓰레기통에 내 머리카락을 다 쓸어 담고 나서야 울고 있는 내게 하얀 티슈를 건넨다. 창피했다. 그냥 확 나가 버릴까? 잠시 고민했지만, 앉아 있으나 이러고 밖에 나가나 똑같이 창피할 것 같아 앉아 있기로 한다.
십 년을 다녔던 회사에서 나왔다. 한마디로 가슴 아프게 말하면 잘렸다. 그 누구도 그만두라고 먼저 말하지 않았지만, 조직 개편으로 내가 운영했던 팀이 사라졌고, 팀원들은 팀장인 나만 남겨 둔 채 다른 팀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 서른 중반을 훌쩍 넘어 선 나는, 그렇게 회사에서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회사를 그만두고 오늘 아침 일주일 만에 외출을 했던 것이다. 새벽이나 저녁에만 보던 세상과 낯 시간의 세상은 참으로 달랐다. 낯섦에 이리저리 방황하다 쇼 윈도에 비친 내 추래한 모습을 보고 무작정 미용실로 왔다. 그저 대역죄인으로 보이는 긴 머리를 자르고 싶었을 뿐인데 바닥에 뒹굴고 있는 내 머리카락을 보는 순간, 설움이 불쑥 올라왔다. 잘려나간 머리카락이 회사에서 잘려나간 내 모습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16만 5천 원입니다.”
카드를 건네는 손이 떨렸다. 월급을 받고 다닐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새삼 비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용실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거리로 나왔다. 어느새 오후 햇살이 길게 드러누워 있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지나가는 것도 보인다. 골목을 돌아서는데, 갑자기 바람이 분다. 예기치 못한 눈물처럼 그렇게 숨어 있던 바람이 불었다. 머리를 짧게 잘라서일까? 그 바람이 무척 서늘하다. 달라진 것은 나 밖에 없는데, 매일 불던 바람도 매일 보던 거리도 모두 낯설다. 그렇게 낯선 길을 따라 집으로 가는 길, 일용할 양식들을 사러 편의점에 들렀다. 인스턴트 음식들을 하나하나 집으면서 생각한다. 내일은 뭘 할까?
“2만 3천 원입니다.”
몇 개 안 되는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비싸다. 내일부턴 마트를 이용해야겠다, 편의점 문을 밀고 나서다가 문득, 내일 해야 할 일이 떠올랐다. 반가운 마음에 가던 길을 멈추고 휴대폰에서 검색을 한다. 실업급여받는 방법. 다행이다. 내일은 갈 곳이 생겼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