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노래소설] 로이킴의 "상상해 봤니?"

어쩌면 모든 사랑에 실패한 사람의 자격지심일지도 모르겠다.

by 조경아


내 좋은 친구는 요즘 푹 빠져 있는 로맨틱 드라마 이야기뿐이다.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드라마였지만, 이미 열 번은 더 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순간, 서로 눈이 딱 마주친 거야! 정말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니까!”

“응, 그랬구나.......”

“뭐야? 영혼 일도 없이.”

“그 얘기만 벌써 30분째 하고 있는 건 알고 있냐?”


결국 친구의 뽀로통한 표정을 보고 말았지만, 괜찮았다. 덕분에 친구의 드라마 얘기가 더 길게 이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친구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아주 어리고 푸릇한 연인들의 모습을 보았다. 그들의 설레는 눈빛과 미소를 보며, 나는 친구의 그 드라마 이야기보다 더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그들의 설레는 로맨스의 끝은 과연 아름다울까?




내 친구와 달리 나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현실성 없는 너무 황당무계한 이야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전혀 일어날 것 같지 않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하는 거라면 친구처럼 대리만족감이라도 느끼면서 행복할 수 있겠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해피엔딩을 이루고 마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는 너무 뻔하고 뻔뻔스러워서 좀처럼 감정이입을 하기 어려웠다. 더군다나 드라마에 나오는 캐릭터들은 사업이 망해도, 다신 일어서지 못할 것 같은 절망 속에서도, 건강을 잃어도, 치욕감이 드는 배신을 당해도, 곧 죽게 될지 몰라도, 어떻게든 사랑에 빠지고 또 그 사랑을 이루어내고 만다. 더 광장한 것은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주인공들은 항상 멋지고 예쁜 모습으로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해내고야 만다. 나는 그런 억지스러움이 싫었던 것이다.


어쩌면 모든 사랑에 실패한 사람의 자격지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랬다. 내게 사랑은 마냥 설레고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슬픔이었고, 외로움이었고, 안타까움이었다. 억울하지만, 그런 사랑만을 하게 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사랑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모르는 당신들처럼, 로맨틱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들처럼, 사랑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가와 내 일부가 되는 당연한 일이 아니다. 나처럼 모든 상황이 꼬이고 엎어지고 안타까운 사랑을 하게 되는 사람도 하늘에 별만큼 많은 것이다. 그래서 내게 사랑은 판타지고, 내가 절대 가질 수 없는 별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물론, 이런 나에게도 사랑에 대한 판타지가 있었다. 별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어떤 이를 만나 그 사람을 아낌없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꿈같은 일들을. 실제로 나는 그런 누군가를 발견한 적도 있다. 그 빛에 반해 혼자 행복해하고 웃음을 짓기도 했다. 하지만, 그 별이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결국은 숨죽여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당신에게 물을 마시는 일처럼 쉬운 일이 나에게는 하늘의 별을 따는 것만큼 어려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누군가에겐 편파적이고 얄궂고 안타까운 것이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보다 사랑하면 안 될 이유가 더 많아져 버린 지금, 나는 가끔 상상해 본다. 마음이 가는 대로 사랑할 수 있다면, 과연 드라마에 나오는 그들처럼 나도 누군가를 열정저거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다. 수학이 제일 어렵다던 조카의 말처럼, 내게 사랑은 풀기 어려운 수학 문제와도 같다. 아니, 어쩌면 내게 사랑은 조금만 건드려도 터져 버릴 것 같은 위험한 상처일지도 모르겠다.




닿을 수 없는 하늘 구석 어딘가에 홀로 빛나고 있는 별을 무심하게 바라보며 어느새 나는 집 앞 편의점 앞에 와 다. 내일 마실 생수를 사려다가 시원해 보이는 맥주 한 캔을 집어 들었다. 순간, 부르르르. 문자가 왔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내 좋은 친구였다.


/미안해. 내가 오늘 너무 드라마 얘기만 했지? 요즘 내가 다른 낙이 없어서 그래. 그래서 하는 말인데, 너도 그 드라마 같이 좀 보면 안 될까?/


푸흡!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내 좋은 친구는 그 드라마를 내게 영업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사랑이 어떻고, 로맨틱 드라마가 어떻고 쓸데없는 생각만 한 바가지만 하고 있었다. 귀여운 드라마 빠순이 내 친구를 위해 취향에 맞 않는 그 드라마를 한 번 봐줘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또 누가 알겠는가? 드라마처럼 내게도 드라마 같은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끝.


>>로이킴의 "상상해봤니?" 노래듣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