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뼈처럼 앙상해진 초승달이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어.
그런 사람이 있어. 평소엔 까맣게 잊고 지내다가 뜬금없이 생각나는 사람. 전혀 생각날 만한 일도 없었는데, 그냥 문득문득 떠오르는 사람. 이상하지. 그래 이상해.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그렇게 생각해. 언젠가 그 사람을 위해 내가 했던 말들이 세상을 떠돌다 내게 다시 돌아오는 거라고. 써 놓고 보니 우습네. 작은 일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혼자 감성 충만해진 사춘기 소녀처럼.
“갈비 먹자. 오랜만에!”
오늘 꼭 갈비를 먹어야겠다는 친구를 위해 오랜만에 저녁 약속을 했어. 전화를 끊고 약속 장소로 가려는데, 문득 그 사람이 떠올랐어. 웃기지. 도대체 그 사람이 갈비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아니, 언제 갈비를 먹으러 갔었나?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 사람과 갈비는 어울리지 않았어. 덕분에 나는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 사이에서 흔들거리고 있는 내내, 그 사람 생각을 했어. 잘 살고 있겠지? 이러다가 갈비 집에서 그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되는 거 아냐? 후후.
갈비를 먹었어. 맛나게. 처음 간 집이었는데, 맛있었거든. 야무지게 갈비를 먹고 배를 두드리며 나왔어. 물론, 그 사람을 만나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지.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정말 웃픈 일이었을 텐데. 갈비 집에서 만나는 옛사랑이라니. 시트콤 같은 일이잖아.
한때 그런 생각을 했었어. 그 사람과 죽을 때까지 절대 마주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나를 떠난 그 사람이 행복해 보여도, 행복해 보이지 않아도 내겐 너무 아픈 일이었을 테니까. 지금 생각하면 좀 쓸데없는 고민이었지. 헤어진 사람과 우연히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근데, 그때는 그런 생각을 할 만큼 아프고 힘들었던 거야. 지금은 어떠냐고? 글쎄, 잘 모르겠네. 아마도 그냥 모른 척 지나치겠지. 아니, 어쩌면 서로 못 알아볼지도 모르지.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적어도 갈비 집은 아니었으면 좋겠어.
사랑이란 게 뭘까? 요즘도 가끔 생각해. 내게 사랑은 온전히 가져보지 못한 판타지 같은 거니까. 누군가 물었어. 너는 왜 사랑을 믿지 않아? 그땐 대답을 못했는데, 지금은 말할 수 있을 거 같아. 내가 믿지 못하는 건 사랑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고.
난 말이야. 내가 사랑이 많은 사람인 줄 알았어. 그래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그 사랑을 지킬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거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어. 특히 나 같은 사람에겐. 결국, 나는 내가 부서질까 봐 사랑을 먼저 놓아 버렸어. 나를 지키고 싶어서. 놓치고 싶지 않았던 그 사랑을 놓아 버린 후에야 깨달았지.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비겁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그래, 나는 그 사람이 아니라 나한테 실망했던 거야. 그래서 더 아프게 절망하고 좌절했던 거지.
안타깝게도 나는 아직도 사랑을, 아니 나 자신을 믿지 못하겠어.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의지도, 자신도 없는 거지. 내가 했던 게 사랑이었는지 조차 의심스러울 만큼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도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나 봐. 그래서 뜬금없이 떠오르는 그 사람의 얼굴에 그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했던 거지. 그래, 나는 아직도 그 사람을 꿈에서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그 사람을 보게 되면, 못난 그때의 내가 자꾸 떠오르니까.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갈비뼈처럼 앙상해진 초승달이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어. 배는 부르지만 외로운 밤에 딱 어울리는 배경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울컥 눈물이 나는 걸까? 아무래도 오늘 갈비를 먹은 게 잘못인 것 같아. 당분간 갈비는 먹지 말아야지. 그래도 다행이야. 지금 이 순간 갈비 때문이라는 핑곗거리가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