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 소설] 이소라의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퐁퐁 올라오는 수증기처럼 내 눈물도 퐁퐁 솟았다.

by 조경아


그녀는 참 예뻤다.


피부과 대기실 소파에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그랬다. 인형처럼 똑 떨어지게 예쁜 얼굴은 아니었지만, 하얀 피부에 앞머리 없이 가지런히 뒤로 빗어 올린 머리와 동그스름한 이마가 참으로 예뻤다. 옅은 갈색에 가늘지만 숱이 많은 머리카락 사이로 간간히 삐져나온 솜털 같은 잔머리 덕분에 그녀는 더 어리고 사랑스러워 보였다. 미색 블라우스 위에 따듯해 보이는 베이지색 카디건, 그리고 그 따뜻한 색과 잘 어울리는 수수한 명품 가방은 그녀를 한층 더 고급스럽고 우아하게 만들었다.


예약 확인을 하고 나는 그녀가 앉아 있는 기다란 소파 가장자리에 앉았다. 그녀의 가지런한 치마와 매끈한 스타킹 그리고 귀여운 리본이 달린 플랫슈즈가 보였다. 잡지책을 보던 그녀가 나를 힐끗 쳐다봤다. 나는 100년 전부터 이러고 있었다는 것처럼 그녀에게 온화한 미소를 보냈다. 아주 짧지만 어색한 눈인사를 하고 다시 잡지책으로 눈을 돌리는 그녀.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나도 모르게 핑그르르 눈물이 돌았다. 계속 그녀를 바라보는 내가 신경이 쓰였는지 그녀가 다시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얼른 눈물을 감추고 웃었다. 그리고 다정하게 말을 건넸다.


“반지가 너무 예뻐서요.”


그러자 그녀가 나를 보며 샐쭉하게 웃는다. 작고 예쁜 손에 끼워진 가늘지만 반짝이는 반지를 그녀는 익숙하게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그녀의 반지가 ‘나 너무 행복해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하하, 선물 받은 건데 저도 무지 마음에 들어요.”

“네, 반지랑 너무 잘 어울리세요.”


그녀가 다시 미소 지었다. 수줍지만 행복에 겨운 미소였다. 나는 그런 그녀의 미소가 저 반지보다 더 탐나고 부러웠다.


“피부가 무척 좋아 보이는데, 혹시 결혼 준비하세요?”

“네, 다음 달 말에.......”


짐작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꼭 이렇게 까지 확인하고 싶지는 않았다. 돌아갈 다리가 끊어졌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 이상하게 억울하단 생각만 들었다. 그와 2년을 연애하고 함께 1년을 넘게 살았지만, 그는 내게 저런 반지는커녕 정성 어린 선물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결혼은 무덤 같은 거라고. 그때는 몰랐다. 그의 말은 나한테만 해당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헤어지던 그날, 그는 내게 이렇게 소리쳤다.


“도대체, 나한테 바라는 게 뭐야?”


다시 생각해도 아팠다. 내가 그에게 무언가를 바란 적이 있었던가? 나는 그저 지금의 그녀처럼 그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면 그는 내가 그렇게 웃는 것조차 싫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이 피부과 자주 오시나요?”

“아뇨, 오늘 처음 왔어요. 왜요?”

“저도 오늘 처음이라 이 병원이 잘하는지 궁금해서.......”

“괜찮을 거예요. 아까도 말했지만, 원래 피부가 좋으시잖아요.”


어느새 그녀의 솜털 보송보송한 귓불이 붉게 물들었다. 그녀의 수줍음은 그녀를 더 빛나게 만들었다. 문득, 대기실 건너편에 있는 벽면 거울에 비친 우리 두 사람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시들어가는 꽃과 이제 막 피어나는 꽃이 같은 꽃병에 꽂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수줍음에 얼굴을 붉혔고, 나는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이하영 씨? 진찰실로 와 주세요!”


그녀의 이름이었다. 그녀는 이름까지 예뻤다. 그녀는 내게 눈인사를 보내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자리에 앉아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뒷모습조차 예쁘다. 순간, 이곳에 앉아 있는 내가 죽도록 미웠다.




그와 헤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게 새로운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다, 친한 친구가 그와 같은 회사에 다녔는데, 회사 앞에서 그와 그녀가 만나는 장면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 좋은 친구는 그와 헤어지고 나서도 정신을 못 차리는 내게 정신 차리라는 이유로 그와 그녀의 교제 사실을 말해 준 거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수록 그가 더 단념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날 이후, 나는 그의 SNS를 스토킹 하기 시작했다. 그의 SNS 곳곳에 그녀의 흔적이 보였다. 덕분에 나는 그녀의 SNS까지 뒤졌다. 급기야 그녀의 진짜 얼굴을 보고 싶다는 이유로 나는 지금 여기 피부과 대기실까지 쫓아와 앉아 있는 것이다.




멍하니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나는 결국 피부 관리실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우연이었을까? 피부 관리실에 침대에 눕자마자, 바로 옆 침대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아주 조그맣게 들렸다.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지만 그녀가 얼굴에 무언가 뒤집어쓰고, 누군가와 나지막이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개미 소리만큼 작았지만, 이상하게 내 귀에는 더 크고 또렷하게 들렸다.


“글쎄, 어떤 아줌마가 자꾸 내 반지를 쳐다보는 거야! 응! 처음엔 좀 무서웠는데, 부러워서 그런 거더라고. 크크. 내 말이! 근데, 좀 안쓰러워 보이기도 했어. 노처녀 같은데, 피부도 혈색도 너무 안 좋고. 응? 자기 벌써 병원에 도착했다고? 나 아직 안 끝났는데. 웅, 대기실에서 기다려용. 좀 이따 나갈 테니까. 쪽!”


때마침, 누군가가 와서 내 머리맡에 있는 가습기를 틀어 주었다. 수증기를 쐬면 닫혔던 모공이 열린다고 하는데, 나는 눈물샘이 먼저 열려 버렸다. 퐁퐁 올라오는 수증기처럼 내 눈물도 퐁퐁 솟았다. 생각 없이 저질러 버린 미련스러운 미련에 대한 대가를 나는 그렇게 혹독하게 치러내야 했다.



끝.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대에게 노래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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