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물이 모네의 그림처럼 뭉개져 보인다.
“평소엔 안경을 왜 안 쓰세요?”
“아, 평소엔 불편해서...... 책을 보거나 일을 할 때만 써요.”
“안경이 불편하시면 렌즈로 바꾸시죠.”
“렌즈는 더 불편할 것 같은데.”
“이 정도면 일상생활에서도 불편하실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전 괜찮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안경 렌즈를 다시 맞추도록 하죠.”
난시가 심한 편이었다. 안경을 벗으면 표지판을 보지 못해 운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의사 말대로 콘택트렌즈까지 끼고 싶지는 않았다. 안경 덕분에 나는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보지 않을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안경을 쓰지 않으면 나는 모든 사물이 모네의 그림처럼 뭉개져 보인다. 모네의 그림을 바라보는 일은 아름다운 일이지만, 모든 세상이 모네 그림으로 보이는 일은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필요할 때만, 안경을 쓴다. 그리고 모네의 세상과 잠시 이별을 한다.
며칠 뒤, 새로 맞춘 안경을 찾으러 안경점에 갔다. 잘 보여야 하기 때문일까? 안경점 실내조명이 다른 상점들보다 밝았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안경점 주인아저씨가 안경집에서 안경을 꺼냈다. 그리고 습관처럼 안경을 닦았다. 주인아저씨의 현란한 손놀림 역시 흐릿해 보인다. 다 닦은 안경을 내밀며 주인아저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첨엔 좀 어지러우실 거예요.”
안경을 쓰고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초점이 흐려진 내 시력을 교정하느라 안경 렌즈는 최선을 다해 내 눈을 옥죄어왔다. 그 옥죄어옴이 뻐근한 어지러움을 만드는 걸까? 결국, 나는 다시 안경을 벗고 말았다.
“적응하시려면 며칠은 걸릴 겁니다.”
안경을 안경집에 넣고 안경점을 나왔다. 안개가 자욱한 뿌연 세상이 다시 나를 반겼다. 하지만, 이상하게 마음이 편했다. 흐릿하게 보이는 세상이 또렷한 세상보다 살만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유나 씨, 결혼식 준비는 잘 돼가?”
“아휴, 이런 거 두 번은 못하겠어요. 왜 이렇게 정신이 없죠?”
“하하, 그래도 그때가 좋은 거야.”
점심시간, 같은 부서 여직원들의 대화였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설렁탕 뚝배기에 코를 받고 묵묵히 밥을 먹어야 했다. 다행히, 나는 안경을 벗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그녀의 행복한 얼굴을 보지 않을 수 있었다.
내가 안경을 쓰는 순간은 바로 지금 뿐이다. 책을 보거나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일을 해야 하는 바로 지금 이 순간 말이다. 하지만, 조심해야 한다. 행여나 고개를 잘 못 돌렸다간, 보기 싫은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참을 그렇게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데, 사내 메신저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부서 단체 메시지였다. 나는 무심하게 그 메시지를 읽어 버렸다.
<총무 팀 박재석 과장님과 우리 팀 이유나 대리님 결혼식 축의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린 그냥 유나 대리한테 몰아주기 하는 거 아닌가?>
<그래도 될까요? 업무상 박 과장님과 자주 보는 분들도 계신데.>
<그러게. 난 사실 박 과장과 더 자주 보는데.>
<그래도 양쪽에 할 순 없잖아? 우리 부서는 유나 대리로 통일하자고.>
<넵, 알겠습니다.>
방심한 사이에, 나는 그 메시지들을 다 읽어 버렸다. 안경을 쓰고 있었지만, 어느새 모니터는 점심에 먹었던 뿌연 설렁탕 국물처럼 번져 희미해졌다. 결코, 보고 싶지 않은 그 두 사람의 이름을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어머, 윤 대리님! 왜 울어요? 무슨 일 있어요?”
“아, 아뇨. 눈이 아파서........”
나는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후다닥 화장실로 뛰어갔다.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녀가 결혼하는 그 사람이 한때 나와 사랑이란 걸 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사내 연애는 절대 비밀로 해야 한다고 먼저 말한 사람은 그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그가 먼저 회사 사람들에게 그녀와의 열애를 고백했다. 그리고 이번 주 주말, 그는 그녀와 결혼을 하기로 했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나는 다시 안경을 벗었다. 울고 있는 내 모습이 보기 싫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이 서린 것 같은 거울 속에서 한 여자가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뚜렷하게 보였다. 어쩌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거울 속 여자가 서럽게 우는 이유를 적어도 나는 알아줄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