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에 대한 단상들....
“오랜만이다, 여기. 근데 일찍 왔네?”
“아냐, 나도 좀 전에 왔어.”
“뭐 타고 왔는데?”
“그냥 걸어서.”
“잘 지냈지?”
“나야 뭐, 언제나 똑같지. 너는?”
“나도 뭐.”
“실은, 네 전화받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
“왜?”
“너 시집간다는 줄 알고.”
“하하. 말도 안 돼.”
“그냥, 넌 그렇게 갈 수도 있을 거 같아서.”
“그랬구나.”
“참, 나 취직했어. 지난달에.”
“우와, 잘 됐네. 축하해!”
“축하할 일 까지는 아니고.”
“어쨌든, 잘 된 거잖아.”
“지금으로선 그렇지. 가고 싶었던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취직한 게 어디야.”
“그런가?”
“그런 거야.”
“......!”
“......!”
“왜?”
“아냐, 먼저 말해.”
“아냐, 할 말 없어. 네가 먼저 말해.”
“그냥, 네 얼굴 한번 보고 싶었다고.”
“그래. 내가 좀 보고 싶은 얼굴이긴 하지.”
“여전하네. 너는.”
“그럼, 여전해야지.”
“근데, 너 요즘 다이어트하냐?”
“왜? 그래 보여?”
“응. 근데, 하지 마라. 아파 보인다.”
“어쩌면 그럴지도.”
“우리, 3개월 만에 만난 건가?”
“아마도?”
“미안해. 괜히 바쁜 사람 불러내서 실없는 소리만 했네.”
“아니야. 오랜만에 네 얼굴 봐서 좋았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근데, 그거 알아?”
“뭐?”
“예전엔 항상 내가 먼저 연락했던 거.”
“그랬었나?”
“응, 그랬어.”
“내가 잘못한 게 많아서 그럴 거야.”
“괜찮아. 이젠 뭐.”
“그렇지. 이젠 뭐.”
“밥은 먹었어?”
“어, 먹었지. 너는?”
“나도 대충. 근데, 내가 전에 줬던 비타민은 다 먹었어?”
“아니. 조금 남았어.”
“빼먹지 말고 잘 먹어. 넌 담배 피우는 사람이라 그런 거 먹어 줘야 해.”
“참, 나 그 노트북 샀어.”
“그때 그거? 좋겠네.”
“어. 무지 좋아.”
“근데, 하늘 보니까 비 올 것 같다. 그지?”
“그러게. 우산 가지고 왔어?”
“아니. 너는?”
“나도 없어.”
“그럼, 이만 일어날까? 비 내리기 전에.”
“그래, 그래야지.”
“근데, 뭐 타고 갈 거야?”
“택시 타고 갈 거야.”
“너 원래 택시 잘 안 타지 않았나?”
“오늘은 택시가 타고 싶네.”
“올 때 걸어와서 그런 가봐.”
“응, 그런 가봐.”
“택시 잡아 줄까?”
“괜찮아. 그럼, 나 먼저 갈게.”
“그래, 조심히 들어가.”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 이별이었다. 지난 십 년 동안 헤어짐과 만남을 지겹게 반복했던 우리 두 사람이었다. 그때마다 우리는 한 번도 눈물 없이, 싸움 없이 헤어진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랬기에 우리는 다시 만났고, 이별했고, 또다시 사랑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가 헤어진 오늘은 너무도 덤덤했다. 너무도 덤덤해서 그게 이별이었는지도 몰랐다. 다 타버린 양초처럼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의 이별은 조용히 사그라졌다. 어쩌면 진짜 이별은 더 이상 타 오를 것이 없을 때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지금 나는 그때, 그 시절이 문득문득 그립다. 그때의 우리, 아니 그때의 시간들이. 더 솔직히 말하면 정확히 무엇이 그리운지 모를 정도로 모든 게 그립기만 했다. 아낌없이 사랑했던 그였는지, 사랑할 수 있던 그 순간의 나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지금의 나는 그때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고, 미워하고, 아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가, 그 순간들이 이토록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사랑이 이별보다 아파도, 이별이 사랑보다 슬퍼도, 그 어느 것도 할 수 없는 지금의 나는 그렇게 메마른 가슴을 안고, 지나간 순간들을 그리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