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동물 인식 개선
인생은 늘 우리의 모자란 부분을 파고든다. 늘 예측불허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톡이 울려서 봤더니 어린 아이가 연습장에 친필로 쓴 삐뚤삐뚤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오전부터 이게 무슨 일이지? 아, 우리 애는 언제 커서 이렇게 글을 쓰려나?'
의문과 딴 생각이 동시에 들었을 만큼, 그때만 하더라도 아무런 긴장감이 없었다. 그런데 곧이어 밑으로 톡이 우수수 달렸다.
'정말, 따님이 쓰신 거예요?'
'초등학생? 몇 학년이죠?'
'어머, 어쩜? 아빠 닮았나보다. 글을 잘 쓰네!'
알고 봤더니 그건 내게서 이번 신간을 선물 받았던 지인이 남긴 톡이었다. 집에 가서 택배 박스를 뜯었더니 딸이 먼저 표지가 맘에 든다고 뺏어 들고 가더니 이렇게 후기를 써왔다는 것이다.
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출간된 지 일주일도 된지 않은 책이다. 아이는 정말 문자 그대로 단숨에 읽고, 단숨에 후기를 써버렸던 거다.
"애들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어도 이렇게 후기까지 받을 줄은 몰랐네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멋진 자녀를 두셨군요."
금방 정신을 차리고 톡을 남기긴 했지만, 그저 얼떨떨할 뿐이었다.
책은 반려동물과의 추억만을 다룬 게 아니었다. 표지가 다소 울긋불긋해서 동화 같은 이야기만 잔뜩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잔혹동화나 다름이 없다. 유기된 토끼들이 어떤 환경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지를 사실적으로 다루었기에, 부모의 도움 없이는 힘들 수도 있을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걸 직접 눈으로 담아 옳지 않은 행동들에 격분하고, 소외받은 생명들을 위해 눈물을 흘려주기도 했다.
아, 순식간에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 만나 보지도 못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잔뜩 생겨버렸다.
분명 옳지 않은 일들이다. 먹이사슬의 최하위 단계인 초식동물을 유기한다거나, 방치한다는 건 기본적으로 생명을 업신여기는 짓이다. 그런 '나쁜 짓'을 어린 아이가 보고 말았다. 세상의 어둠을 알아버린 것이다. 난 내가 동물들에게 몹쓸 짓을 한 것도 아니면서 괜히 움츠러들었다. 아이가 어둠을 목격해버린 게 모두 다 나의 탓인 것만 같았다.
어째서 우리 사회는 이토록 잔인하고 어두운가? 그런 걸 하나씩 바꿔보자고 만든 책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미 마음이 어두운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책은커녕 순식간에 적나라한 정보가 흘러들어오는 미디어를 본다고 해도 아무렇지 않을 것이다. 항상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마음의 짐을 선량한 사람들이 나눠서 짊어지게 된다.
이번에는 그게 나보다도 훨씬 어린 아이였다는 게 문제다.
분명 원고를 받아서 편집할 때만 하더라도 이 책을 아이와 부모가 함께 읽는 걸 상상했었다. 생명에 대한 무게감과 책임감을 제대로 알려주는 것이야말로 부모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그건 반려동물을 키우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함께 마주하게 되는 생명들에 관하여 하나의 바른 의식을 형성하고 지켜나가는 문제다. 문자 그대로,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다.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그런 일을 직접 겪게 되니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나와 내 가족들만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으로 살았더니 고작 이웃집 아이에게 물려준 게 이런 어둠이었다.
하지만, 인생은 늘 그렇듯이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는 법.
아이의 부모에게서 좋은 책을 만들어줘서 고맙단 이야길 들었고, 뒤이어 책을 받아본 다른 사람들도 많은 걸 생각하게 되었다는 이야길 전해줬다.
난 그제야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정신을 차린 난 곧장 작가님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 책을 부모님들에게도 좀 적극적으로 권장해도 될 것 같아요."
"저도 그게 좋다고는 생각해도... 아이들이 읽기엔 좀 무겁지 않을까요?"
"작가님도 이걸 보세요. 제가 오늘 아침에 받은 겁니다."
아이의 글을 읽어본 작가님도 나와 같은 마음이 드셨는지 한동안 답이 없었다.
난 묵묵히 그녀와 짐을 나누었다.
"네, 오히려 아이들이 읽으면 더 좋을지 모르겠네요."
"그렇죠? 오히려 아이들이 더 맑고 투명한 눈을 가졌으니까요. 그리고 어른들도 알려줄 거면 제대로 알려줘야겠죠. 세상이 얼마나 어둡고, 위험하고, 무서운 것인지. 그렇게 사실대로 알아야 이 아이처럼 분노할 부분에서 분노하고, 슬퍼할 부분에서 슬퍼하고, 용기를 낼 부분에서 용기를 낼 수 있겠죠."
"네, 정말 멋진 아이에요."
그게 바로 어제의 일이다.
오늘의 난 어제의 말을 바로 지키지는 못했다. 오늘은 동물병원 몇 군데에 연락을 취했고, 지자체에는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글을 남기기 직전까지 언론에는 책을 어디까지 돌릴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출판사 대표의 일이란 게 그렇다. 결국에는 이 한몸 살아보자고, 또 돈부터 챙길 일을 먼저하게 되는 거다. 그렇지만, 부끄러움을 잊은 건 결코 아니다. 지금도 이 글을 남기면서 마음을 새롭게 다잡고 있다.
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이 책을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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