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소설
남자는 의심이 많았다. 사실 아이는 늘 집 아니면 카페에서 책을 읽고 혼자 시간을 보내는 날이 많아서 남자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이가 아기를 낳고 다시 무대에 오르고 배우고 싶었던 꽃을 배우며 학원을 다니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숨어 살던 아이가 세상밖으로 나가려 애쓸 때 남자는 모든 만남을 못마땅해했다. 아이가 집에 있기만을 원했다. 오직 자신만의 아이로 있기를 원했다. 의심의 전화가 한 번 두 번 반복되고 아이는 사라지고 싶었다. 아기에게 미안했지만 심장이 마구 뛰어서 어디로든 터지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로 여겨졌다. 끊임없이 거짓말하던 남자를 아이는 용서했다고 생각했지만 극으로 몰린 사람에게는 무슨 이유든 다 끄집어내어 남자에게서 벗어나야 했다. 인간이 인간을 용서할 수 있나. 척으로도 가능하지 않았던 걸까. 아이는 간단한 옷을 챙겨 친한 동생과 동생의 엄마가 사는 원룸으로 도망을 갔다. 아무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며칠을 그 원룸에서 세 여자가 서로를 등지고 잠을 잤다. 눈물이 흘렀던가. 남자는 아이의 아빠에게 아이가 바람을 폈다고 했다. 밖에서 놀아난 건 남자인데 아이는 그렇게 아빠에게도 또다시 버림을 받았다. 길거리로 나가야 했을 때 아이의 아빠는 알아서 하라고 했다. 아이는 아기를 키우면서 돈을 버는 일을 하지 않았고 그런 아이에게 돈을 빌려주는 곳은 많지 않았다. 아이는 주부대출 300만 원을 받아 논현동 반지하방을 구했다. 높은 이자를 생각할 틈은 없었다. 아기에게 미안했다. 아기에게도 아이의 엄마와 같은 엄마가 되어서 스스로의 쓸모를 지워갔다. 아이의 인생에서 아마 가장 죽은 듯 생을 이어간 시간이었다. 그렇게 세 번을 남자와 합쳤다. 합치고 쫓겨나고 지치고 싸우고 서로의 밖에서 서로를 욕했다. 조금은 달라졌나 조금은 아이를 사랑해 주나 조금은 집으로 들어오려나 계속 기대를 했다. 의심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남자가 늦어지면 자꾸만 의심을 했다. 아기를 혼자 보는 방 안에서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남자가 들어오지 않으면 아기를 재우고 맥주를 마셨다. 어떤 날은 6캔도 마셨다. 매일 밤 울며 아이가 술이 늘어만 갈 때도 남자는 웃지도 않았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했는데 결핍이 맺어준 사랑의 결속은 이토록 끔찍한 고통으로 끝나는구나. 아이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남자를 사랑했고 고마워하고 함께 잘 살아나갈 수 있다고 믿었다. 아이니까. 부모의 사랑이 왜 필요한지 알았던 아이니까 둘이 아기를 사랑으로 키워낼 수 있다고 정말로 믿었다. 남자의 한 번의 실수는 아이의 평생의 상처가 됐고 좁힐 수도 메꿀 수도 없는 틈을 만들었다. 서로가 자신을 지키려고 했던 말들과 눈빛과 자신만을 애처롭게 여긴 행동들은 합쳐보려는 애씀과 상관없이 틈을 벌려만 갔다. 그렇게 아이의 첫사랑이 질기게 이어졌던 그 사랑이 끝났다. 다시는 돌아보며 기대하지 못하도록 끝이 났다. 아이의 20대가 끝났다. 이상하게 남자가 연애를 시작함이 아이에게 안도가 됐다. 아이와는 맞지 않았지만 누군가와는, 언젠가는 맞는 누군가와 만나 진심으로 사랑을 하기를 원했는지 모른다. 아이가 주지 못한 사랑을 받고 그렇게 아이와 남자는 아기의 부모이지만 삶에 사랑을 포기하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리고 미숙해서 상처만 줬던 그날들이 지금도 여전히 아프지만 언젠가 아물어갈 때 정말 사랑해서 아기를 선택했다고 진심으로 말하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정말로 진심으로 남자가 행복하길 바란다. 그래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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