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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윤서 May 07. 2020

새로운 시작

새로운 시작의 반복이 만드는 나의 삶

어린 시절의 나는 겁이 없었다.

배우를 꿈꿨던, 무대도 공연도 연줄도 없던 그 소녀는 아무도 그 꿈을 응원하지 않았지만

당연하고 간절하게 그 꿈을 믿었다.


놀랍지도 않게 19살이 되던 해, 국립극장 별오름에서 첫 공연을 올렸고

7년 동안 극단 생활을 하면서 연기를 하고 노래를 하고 몸을 움직였다.


나는 어렸고 그곳이 첫 사회생활이었고 당연하게 그곳은 나를 형성해갔다.


그곳은 내가 나온 뒤 폭행과 폭력과 폭언과 노동착취로 고소를 당했고

지금은 그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지 않다.


스스로 다독이며 인생의 많은 시간을 버틴 곳이 어느 순간 나를 작고 나약한 존재로 만들었고

20대 중반 나는 그 어느 곳에서도 위로받지 못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이해시킬 힘도 없었다.

무대에서 세상과 소통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했고 그 흔하게 많이도 들었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아팠다. 몸도 마음도 생각도


그럼에도 나는 살아있었고 살아있단 이유로 먹고살아야 했다.

내 호흡과 심장은 사람을 만나기가 힘들었고 내 몸은 오래 일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눈물도 나지 않았고 힘들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 했다.


괜찮을 게 없는데 괜찮은 일상이 반복돼야만 했고 그 일상은

내가 스스로 '괜찮다' 말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런 자기 위로가 쌓이고 나는 내가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지도

의문이었다.


물가에 비친 모습처럼 흐렸고 흔들렸다.


그러다 정말 몸이 아파서 일을 쉬어야 했다.

아마 마음이 아픈 걸 모른척하면 몸에서 반응하는 듯하다.

나는 결국 모든 일을 멈추고 글만 적었다. 책만 읽었다.


누군가는 스스로 고립시킨다고 말했고 왜 히키코모리처럼 그러고 있냐고 했지만

나는 숨 쉬고 있었다. 나를 돌보고 있었다.

천천히 숨 쉬는 법을 연습했고 천천히 밥을 먹는 연습을 했고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며

눈치 보며 빠르게 뛰던 심장을 달래줘야 했다.


카페에 앉아 아팠음을 인정하기까지 지난 삶의 시간들을 몇 시간이고 적어 내려갔다.


'모두가 그렇게 살아'라는 말로 내 아픔과 상처를 일반화시키는 소리가 싫었다.

정말 모두 그렇게 살아간다면 나만 못 해낸다는 사실도 화가 났다.


그러다 세상에는 그렇게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각 개개인의 어쩔 수 없음을 

삶을 글로 옮기며 배웠고 그 사실은 꽤 많은 부분에 적용이 되었다.

'나'라는 사람이 괜찮지 않았음을 인정하니 '상대'도 괜찮지 않을 수 있다는 걸 느끼게 됐다.

그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을 버티고 버티고 익숙해지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당신에게도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극단에서 내가 겪은 일들이 옳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옳지 않음을 옮지 않음으로 볼 수 있는 눈도 스스로 돌보고 나서야 생겼다.


세상에 선한 영향력 있는 예술가가 되고 싶었고

세상은 나의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았지만 그 끝에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저 나의 생각과 나의 삶을 위로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내야만 했다.

나는 글로써 살고 있었고 글을 읽음으로 위로받고 있었고 

내 글로 세상을 안아주는 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나는 언젠가 글을 쓰는 행위로 생명연장을 하고 있다고 말했고

다른 작가님의 글에서 같은 문구를 읽었을 때 다행이라고 여겼다.

글이 정말로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과 함께 말이다.


두려움 없이 마냥 해맑았던 그 소녀는

마냥 어리지도 그 어떤 것도 안정되지 않은 지금의 애매모호한 어른이 되어

그 시절 간절하고 당연하게 믿었던 순수함을 기억하려 한다.


두려움이 뭔지 알고 있어도 세상에 옳지 않음이 있음을 알고 있어도

그 시절 간절하고 당연하게 믿었던 순수함을 기억하려 한다.


세상이 아니라 해도 내가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또... 또....

그렇게 세상의 시선에 나라는 사람을 세워가며 세상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지길 바란다.

다시 살아가도 된다고 비난 없는 동정 없는 시선으로 스스로에게 시작을 주려한다.


몇 번의 새로운 시작이 삶을 채워갈지 모르겠지만 

또 시작해도 괜찮다. 살아가도 괜찮다. 우리 그렇게 같이 살아가면 좋겠다.


사진_라이언 맥긴리/ 홍대의 한 카페에서 찍은 사진인데 그때의 나는 저 사진이 너무 공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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