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에게 맞춤형으로 가장 적절한 거리를 띄워놓는 것입니다.
요즘 인간관계가 개편되는 중에 있습니다.
내 의지로 개편하는 경우도 있고, 상대방 측에서 나와의 관계를 개편하기도 합니다.
어제 인간관계 정리에 대한 글을 썼죠.
우리 나라 문화에서 '인간관계 정리'라는 단어는 손절을 완곡하게 표현하는데 자주 이용되는 관용구지만.
내가 의미하는 바는 말 그대로 정리.
서로의 성향 차이에 비해 지나치게 가깝게 설정된 거리를
다시 그 사람 및 나의 성향을 감안하여,
서로에게 맞춤형으로 가장 적절한 거리를 띄워놓는 것입니다.
그래, 칼릴 지브란이 말했듯,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
이렇게 딱 서로의 사이에 선선한 바람과 밝은 달 하나 들여놓을 만큼 쾌적한 거리를 두는 거.
어제 말했던 정리하는 중이라는 인간관계도 딱 이 의미입니다.
정말 지인으로 지냈으면 서로에게 가장 편안하고 서로 좋은 영향을 주었을 좋은 인간관계였는데
지나치게 가깝게 지내면서, 이 관계에 부담감과 권태감을 느끼게 되었거든요.
이러한 작업은, 수명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인간관계를 좀더 오래도록 은은한 향취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그래, 저는 이걸 인간관계 수명 연장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인간관계에 숨을 불어넣는.
앞서 말했듯 인간관계 정리라는 말에는 냉정하고 잔인한 뉘앙스가 있죠.
서로 나눴던 정을 매정하게 딱 끊어버리는 것처럼 느껴지죠.
당한 사람은 내 가치가 아무 것도 아니었다는 모멸감에 휩싸이죠.
제가 요즘 하고 있는 인간관계 정리는 '손절'의 의미는 확실히 아니예요.
오히려 상대방에게 애정이 있어서,
서로 상처받지 않고 서로를 여전히 좋은 사람으로 여길 수 있게끔,
그 관계에 선선한 바람이 통하게 다시 다듬는 거죠.
인연이 있다면, 서로 미운 정 고운 정이 충분히 쌓일만큼 시간이 흐르면, 이제 상대방의 성향 차이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단계를 거쳐서 서로 가까워지고,
그러다보면 비로소 진정한 의미에서 친구가 되는거죠.
그런 여유 시간 없이, 성향 차이를 소화해낼 시간도 없이
지나치게 빨리 가까워져버린 인연은... 탈이 나기 쉬워요.
당신이 저에게도 소중한 사람이라, 탈이 나서 서로에게 트라우마가 되지 않게, 그래서 관계를 조정하는 겁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안 맞았냐면요,
제가 슬픈 일을 겪었을 때, 일 터지자마자 나 위로해주겠다고 달려와서 톡을 보냈는데 그 오지랖 가득한 말들이 저를 더 상처받게 한 경우요.
그의 위로가 악의 한 점 없는 선의로 가득찬 행위인 거 압니다. 하지만 제 가치관과는 맞지 않아요.
저는 위로나 조언을 남에게 딱히 요구하지 않은 사람에게, 함부로 조언 주는 걸 그 사람 영역을 침해하는 걸로 여겨요.
이런 성향조차 이해하지 못할만큼,
우리는 사실 대화의 다양성을 갖추지 못했던 거죠.
알고 지낸 시간은 제법 오래되었을지언정,
그동안 나눈 대화량이 제법 많았을지언정.
그 땐 제 속은 불편해졌지만 고맙다며 넘겼어요.
의도만을 보려 노력했죠.
하지만 제가 그걸 소화하지 못하고 결국 탈이 나버렸음을,
계절이 바뀌고서야 알았어요.
그리고 결단했죠.
이 분과는 절친으로 지내기에는 아직 인연이 무르익은 게 아니구나. 지인 정도의 거리감이 적당하구나.
업계 지인 정도의 사이에선 뜬금없이 사생활 관련 위로나 조언을 주고받는 건 적절치 못하잖아요?
(그것도 제가 위로나 조언 달라고 먼저 요청한 것도 아닌데...
제가 위로나 조언을 먼저 그 분들에게 구한 거면, 제가 겪은 마음의 소화불량은 제 탓이니 제가 감당해야 할 문제라고 납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