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메즈 카즈오의 <복수괴인>과 히노 히데시의 <죠로쿠의 기묘한 병>
제게 유난히 인상깊게 다가온 공포 만화가 있습니다.
강렬한 심상을 독자에게 전달해요.
단순히 공포감 뿐만 아니라 삶의 철학까지 선사한 만화죠.
바로 우메즈 카즈오의 <복수괴인>과 히노 히데시의 <죠로쿠의 기묘한 병>입니다.
짤막하게 소개하겠습니다.
<복수괴인>의 주인공은 영주에게 충성하던 무사였습니다.
하지만 간악한 영주와 그의 아들은 무사와 그의 아들을 심하게 학대해요.
매일 영주 아들의 학대에 시달리던 무사의 아들은 실수로 무사의 아들을 다치게 합니다.
영주는 분노하여 무사의 팔과 혀를 잘라요.
그리고 무사를 감옥에 가두고 노예와 같이 중노동을 시키죠.
그 뒤로도 분이 풀리지 않은 영주는 끝내 무사 아들의 목까지 잘라요.
그걸 본 무사는 복수를 다짐하지만... 남아있던 두 다리마저 잘리고 맙니다.
팔다리가 없는 불구의 몸이 되었지만 그 기백만큼은 굉장했어요,
감옥에서 유달리 무시당하던 지능장애인이 1명 있었는데,
모두가 무시하던 지능장애인을 무사만은 지켜주고 함부로 대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지능장애인은 무사를 '팔 없는 대장'이라고 부르고 공경하죠.
그리고 무사의 원념을 알고 함께 복수를 도와줘요.
지능장애인은 비록 지능은 낮았지만 다리 하나는 누구보다 빨랐거든요.
무사를 업고, 같이 뛰어주죠.
팔다리가 없어도 무사는 최고의 무예를 지녔던 몸. 칼을 입에 물고 영주를 죽이려 했습니다.
무사와 지능장애인의 협공으로 영주를 죽이고, 무사는 이제 복수를 이루고 삶의 이유를 상실해서 죽고 말아요.
하지만 무사가 죽였다고 생각했던 영주는 대역이었어요.
교활한 영주는 무사가 자신을 죽이러 올 거라 생각하고 미리 대역을 준비한 거죠.
그렇다면 무사의 복수는 실패로 끝난 걸까?
지능장애인은 무사가 죽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그 뒤로도 하염없이 달렸습니다.
하지만 지능장애인은 이미 몹쓸 전염병에 걸려 있었고,
발이 빠른 지능장애인이 성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달리는 동안 성 안의 모든 사람들
영주와 그의 아들까지 전염병에 걸려 숨을 거두고 맙니다.
무사의 복수는 결국 성공했던 거죠. 무사와 지능장애인의 인연에 의해.
스무 살에 이걸 읽고 나는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 깊은 깨달음을 얻었죠.
지나가는 사람에게 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모두가 무시하던 사람이라도, 내게는 내 간절한 바람을 이루어줄 수 있는 귀인일 수 있다고.
<죠로쿠의 기묘한 병>도 저에게 삶의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죠로쿠는 온 몸에 7가지 색의 고름이 피어나서 모두에게 거부당하고 외롭게 살아갑니다.
죠로쿠는 자신의 고름을 물감 삼아 최고의 예술을 만들어냅니다.
이 만화를 읽었을 때 한참 마음에 슬픔이 가득차 있던 상태였는데...
이 만화의 죠로쿠처럼...그런 위안이 들었습니다.
슬픔과 괴로움 같은 겪고 싶지 않은 일들도, 어쩌면 더 큰 아름다움을 만들어낼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슬픔, 괴로움, 우울 등을 마냥 피하려 하지 말자.
그리고 저는... 이 만화를 읽은 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잎새에 이는 바람 따위의 작은 시련이 마음에 불어닥칠 때
마치 칼날 섞인 폭풍을 맞은 듯 크게 아파합니다.
하지만 이런 고통을 겪는 것이 두렵지 않습니다.
적어도 마음이 힘들 때 썼던 글 같은 거,
생각을 정리하며 썼던
그런 글들을 브런치나 핀터레스트에 올리곤 하는데,
이런 글로 인해 마음에 위안을 얻었다,
인생에 힘을 주는 좋은 글이라는 사람들의 반응을 얻으면서
제 고통이 의미 없지는 않구나,
누군가에게는 마음에 위안이 되는 컨텐츠를 만들 원동력이 되었구나.
차라리 내일은 또 어떤 시련이 올지 기대가 된다,
그래도 나는 이 시련을 재료 삼아 뭔가 통찰력이 엿보이는 컨텐츠를 만들 능력이 있으니...
이렇게 생각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불확실한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어요.
내 삶에 뭐가 왔든, 나는 그걸 남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는 컨텐츠로 만들 수 있으니까.
좋은 만화들입니다.
이 글을 본 당신들에게도,
꼭 이 만화가 아니더라도,
단지 읽는 순간만의 짜릿함과 즐거움 뿐만 아니라
삶을 지탱할 철학을 줄 수 있는 그런 인생작 같은 만화를 만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