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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매니저 Jan 06. 2021

'광산의 카나리아'와 <스타트업>의 한지평

위험을 미리 경고하는 존재의 소중함 


'광산의 카나리아'라는 관용구가 있다.


카나리아는 굉장히 예민한 호흡기를 가진 새다. 


이런 카나리아의 특성을 살려, 과거 가스 누출 탐지기 같은 기술이 없었을 때,  카나리아를 산소 측정기 대신 사용하여 광부들의 위험을 막았다.

광산 안에 산소가 부족할 때, 일산화탄소가 누출될 때, 카나리아는 노래를 멈추고 픽픽 쓰러진다.


카나리아가 쓰러지면 광부들은 탄광 안에 위험이 생겼음을 감지하고 그 즉시 탈출을 시도한다.


이렇게 카나리아는 많은 광부들의 목숨을 구했다. 




이래서 광산의 카나리아는 '위험의 전조'라는 뜻으로 쓰이는 관용구가 되었다.


그런데 어떤 광산업자들은 섬세한 카나리아가 시도때도 없이 울음을 멈추자, 


이 놈의 카나리아가 불안감을 조성해서 광부들 업무 의욕을 떨어트린다면서 카나리아를 광산에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을까?


탄광에 카나리아가 사라지자, 광부들은 조그만 사건만 발생해도 불안감에 광산을 탈출해 버렸다. 


위험을 경고하는 카나리아의 존재는 업무 효율에 방해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업무 효율을 높여주고 생산성을 담보해주는 소중한 존재였던 거다. 






드라마 <스타트업>에서 한지평 팀장은 공유 배터리 사업을 하려는 스타트업에게 쓴 소리를 한다.


(스푼라디오로 대성하기 전 배터리 공유 서비스를 준비하다 접은 '마이쿤'의 실제 사례에서 모티브를 얻은 에피소드다.)


이제 휴대폰이 배터리 일체형으로 전면 교체되는 정보를 몰랐냐고, 이걸 모르고 사업했다면 당신은 창업자 자격이 없는 사람이고, 알고 했으면 당신은 사기꾼이라고.


스타트업을 하면서 잔뜩 마음이 약해지고 예민해진 대표는 급기야 극단적 선택을 한다.


대표의 동생은 독설을 내뱉은 심사역 한지평에게 복수심을 품는다.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 업계 많은 사람들이 한지평에게 감정이입을 했다.


한지평은 자기 직업 윤리를 지켰을 뿐인데. 


그럼 누가 봐도 뻔히 가망이 없는 위험성 가득한 사업을 접게 하는게 맞는 건데, 가만히 입다물고 있으면 심사역으로서 사명을 게을리 하는게 되는데.


자기 할 일을 했던 한지평이 멱살까지 잡혀가며 처맞는게 너무 과하다고. 


나는 생각했다.


한지평이 꼭 광산의 카나리아 같다고.


탄광의 위험성을 경고하다가 끝내 목숨까지 잃고 마는 가련한 새. 


그렇게 고마운 일을 하는데도 광산 경영자들에게 '사람 마음 괜히 불안하게 흔들어놓는다'면서 미움받는 새. 


나도 어쩌면 광산의 카나리아나 한지평처럼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미움받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폭력을 당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은 해야지.


암, 그렇고 말고.



광산의 카나리아는 고단한 일을 하는 광부들의 좋은 친구였다.


카나리아는 자기를 귀여워해주고 아껴주는 광부들을 위해서 기분 좋으라고 계속 듣기 좋은 꽃노래를 부르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지금 노래를 멈추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어,


그토록 정들었던 광부들이 하나 둘씩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쓰러지는 걸 봐야겠지?


나도 죽고 광부들도 다 죽는단 말야.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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