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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매니저 Dec 13. 2021

손절 잘하는 사람은 그만큼 손절당할 걸 각오해야지

인간관계의 작용 반작용


다음 사례는 6년간 10번 직장을 바꾸고,

직장을 바꿀 때마다 전 직장 동료들을 손절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매번 바꾼 친구를 손절한 사람 이야기이다.

본인은 남을 밥먹듯이 손절하면서 자신이 손절당하는 것을 감당할 용기는 없었던 건가...?

자신만이 늘 남을 평가해야만 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참으로 오만하다.


이 사람 뿐만이 아니다.

타인에게 첨예한 잣대를 들이대며

쉽사리 손절 잘하는 어떤 사람 또한

자신이 손절당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하다.


자신이 누군가를 평가했으면

그만큼 자신도 평가당해야하는 것을 감당하는 것이

정의라고 난 생각한다.


마태오 복음서 7 2절을 묵상하자.


(너희가 남을 판단하는 것만큼 너희도 판단을 받을 것이며 남을 저울질하는 것만큼 너희도 저울질당할 것이다.)




우리는 걸어가면서 지구를 뒤로 밀고 있고,

그만큼의 힘을 통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물리 법칙에 작용-반작용이 있는 것처럼,

인간 관계 또한 이 법칙이 작용한다고 믿는다.




과거 인간 관계의 정론은 사람이 아무리 힘들어도 참는 게 미덕이었던 것 같은데

그로 인해 상처받고 자기 삶을 꾸려나가지 못하는 희생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다보니

(대표적인 예로 신성일-엄앵란 커플)


이제는 나를 힘들게 하는 인연, 기를 빨리게 하는 인연을 빨리 끊어내라는 게 정론이 된 듯 하다.

인간관계를 논하는 많은 책들이 '에너지 뱀파이어는 빨리 손절해라' 를 답으로 내세우고 있고,

인터넷 커뮤니티도 손절을 부르짖는다.



이런 이유로 남을 손절하는 건 전혀 이기적인 행위가 아니라고,

나를 지키고 에너지를 보존해서 더 좋은 사람을 아껴주는 이타적인 행위라고.

이런 사고방식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었다.


물론 이기적인 부류, 타인을 착취하는 부류는 곁에 둘 필요가 없다.

하지만 손절 문화가 너무 극대화되다보니,


이젠 도의적으로 잘못한 바 없는 사람들마저

그저 내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빠르게 손절해버리는 행태마저 미덕으로 인식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남을 쉽게 손절하는 자신에게 취해 있기도 하고.




작년까지만 해도 난 MBTI 과몰입이었지만,

올해 MBTI 깨끗이 탈덕했는데.


아무튼 어떤 MBTI 유형 중에 '타인에 대한 복잡하고 섬세한 기준을 갖고 있고,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빠르게 타인을 손절하며, 그 과정에서 다시 상대방에게 복구되는 감정은 없다'고 설명되는 유형이 있다.


그리고 그 유형에 속하는 일부 명사나 유튜버들이 자기 유형 단점에 대해 해명하는 듯 하면서

사실은 그런 자신의 모습에 도취되어 있는 모습을 많이 보고 착잡함을 느꼈다.


'남보다 청정하고 복잡하고 자기 안에 갈등이 많아 괴롭고 우울하고,

그래서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을 손절해야 하고,

그 와중에서도 타인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것에 죄의식 갖고 괴로워하는 나'에 도취된...


이 설명이 꽤 멋들어지게 느껴졌나 보다.

아무도 오르지 못할 높은 설산에서 홀로 외로이 진리를 찾는 고독한 구도자

혹은 더러운 세상에서 자기 혼자 깨끗한 공기를 들여마시고 살아야만 하는 병약예민미 있는 고결한 귀족처럼 느껴졌는지...


해당 내용을 담은 유튜브 채널에 모인 그 유형들이,

그런 자신에게 더 과몰입하면서, 이런 행동을 하는 자신에게 취해가고 있다.


이런 걸 보면서 느꼈다.

MBTI 특징에 자기 자신을 끼워 맞추는 행동이 참으로 유치해 보인다고.

그래서 나는 MBTI를 버렸다.

이걸 프레임으로 내세우면 진정한 나도 잊고, 또한 남들도 편견에 가득찬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면서.

인간관계에서 즐길 수 있는 예상치 못한 기쁨들도 수확하지 못하겠구나...


내 MBTI 유형도 이젠 잊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




나를 아프게 하는 인간관계까지 억지로 끌어안을 필요는 없지만,

반대 급부로 인간관계의 무조건 손절 또한 미덕으로 올려치기되는 작금의 세태에 의문을 제기한다.


뭐든지 양 극단으로 치닫는 것은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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