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지음씨의 일일(강화편)

by 지음

9월 24일. 아침. 오늘의 지음씨는 평소보다 2시간 늦게 집을 나섰다.

중간고사로 인한 휴일이라, 전날 사소한 통화를 길게 한 탓이다.

5시 반에 일어나 배달로 콩국수를 꼭꼭 먹고 나선, 다시 기절해 버렸다.

휴일이란 무섭다. 인지하는 것 만으로, 몸을 무겁게 만든다.

정신 차렸을 땐 이미 3시간이 흘러 있었다. 부랴 부랴 노트북만 챙겨 뛰어나가는 지음씨.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까.



10시가 다되어 스타벅스에 닿아 부랴부랴 급한 퇴고를 마친 지음씨.

마지막 문장에 비둘기 대신 dove를 써 놓은뒤 도브리란 단어에 꽂혀있다.

동유럽을 떠돌다 들은 단어가 비둘기랑 비슷하다며 연결지어 뭔가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망상에 시간을 잔뜩 낭비한다. 퍼뜩! 깨달았을 땐 시간이 꽤 흘러 있었고, 그는 직감했다. 집중력은 괜찮은데 감성이 쳐져 있어. 잘못하면 하루를 공치겠구만.


두리번 두리번 대다 화장실로 향한다. 쾌변을 하고도 문장이 나오지 않는다. 평소 같지 않음에 무의식중에 툭 튀어나온 말. "바다라도 보러 갈까...", "갈까..." "갈까..."

구글 맵스를 켜고, 아고다에 접속한다. 호텔비만 괜찮으면 가자. 생각나는 대로 도시 이름을 댄다. 군산, 인천, 강릉, 그리고... 강화도?! 알수 없는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강화도의 숙소가 제일 위에 올라와 있었고. 그곳은 1박에 3만원 밖에 하질 않고. 바다가 보이는데 이름은 무려 사이판 이란다. 가자.


시간을 길지만, 강화도 가는 버스는 집 근처를 지났다. 동교동 삼거리. 문제라면 버스 간격이 40분 이라는 것. 막 신촌을 지나간 버스는 어쩔 수 없고, 다음 버스는 30분 뒤. 집에 가서 옷 한 벌과, 내일 아침 먹을 약을 챙기기에 적절한 시간인것 같았다. 전에 없이 단호하게 노트북을 접고 물건들을 챙긴다. 조금 급하지만, 괜찮다. 집까지 가는 길이 13분. 집에서 버스 정류장 까지가 10분. 여유 있다. 출발이다.


놓쳤다. 집 가는 길에 내리기 시작한 비. 우산을 챙겨가야 하는 생각에 지체하긴 했지만, 그탓은 아니다.강화와 서울의 날씨를 모두 뒤지는데는 1분도 안걸렸다. 버스가, 앱의 예측보다 빨랐다. 놓쳤음에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다음 버스도 더 빠르게 오겠지.(왠일로 긍정적이다.) 하루를 거치적거릴 깜장 우산은 놔 두고, 비속으로 몸을 맡긴다. 서서히 강해지던 비가, 버스 정류장에 딱! 도착하니 우수수 떨어진다. 나이스! 버스는 37분 남았다.




이렇게 버스를 기다리려,

비오는 정류장 안에서 오래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여름 보다는 가을이 되어버린 추분.

왜인지 일본의 여름, 청춘을 떠올리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다.


비 맞는 장면을 생각하면 그 장면이 떠올라.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는 그..

영화 리뷰하는 프로그램에서 짧게만 본 장면이.




앉아 있는 동안, 동교동 삼거리의 카페. 원래는 사주보는 홍카페가 디저트 39가 된 건물을 보고 있었다. 주황색 가까운, 형광의 비눗방울 표면같은 색떨림이 있는 필름으로 유리를 바른 건물. 아름답다. 보고 있자니 몇일 전 만든 조명 시제품이 떠오른다. 꽃 그림자에 색이 없어서 아름답지 않다던 말도. 카페의 유리 필름과 LED 전반사를 이용하면 무언가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할 일도 적으니, 부지런히 아이디어를 기록해 둔다. 도움이 될까? 의심만으론 소용없다. 일단 해보기로 한다. 이내 버스가 온다.






예정보다 일찍 도착하는 버스를 기다렸던 것은,

돌아볼 때 즐거운 감정의 지뢰를 심는다.

그만큼이나 효율이 좋은 거겠지. 그걸 버리려 떠나는 여행에서 조차도.


멀리 버스 타고 가는 건, 기분 좋은 일임을 알았는데 비오는 날은 더 좋다.

우산 없이 걷고도 비 덜 맞고 버스를 타서 더 그래.

쏟아지는 비를 간신히 피해내 아슬아슬.

세이프한 마음이 버스 흔들림과 공명한다. 날개짓을 한다.

곧 날아 오를 것같이.



중간에, 강서구와 김포의 경계 즈음에선가 폭우가 쏟아졌다. 도착 이후가 걱정 됐지만 괜찮다. 나는 버스 터미널에서 환승하니까.(비를 안맞고 기다릴 수 있다.) 바뀌는 창밖 풍경을 따라 많은 상념이 오르 내렸지만 애써 붙잡지 않는다. 느끼고 흘려버리기 위해 떠났으니까. 그 과정을 통해 새 감각을 채우려 했으니까. 다만 짧고 급하게 이 기록만을 남겨 뒀다.



김포 이 동네엔 천마산과 태산이 다있네. ㅎㅎㅎ

장난스런 무협지, 동네 무협지 배경으로 딱 좋겠다.




천마산을 지나자 곧 다리를 건넜다. 강화 버스터미널도 곧이었다. 사실 섬으로 들어서자 두근두근해 둘러보느라 시간 가는줄 몰랐다. 조금 잦아든 비를 뚫고 버스가 크게 좌회전해 터미널로 들어간다. 좀 더 안전한 곳에 세워줄 걸 기대했지만, 입구에 툭 모두를 떨군다. 중간의 소나기 보단 몹시 가녀린 비. 문제될것 없다는 듯 호방한 걸음으로 천천히, 터미널로 들어간다. 상점가는 낡았지만 꽉 차있고, 활발했다. 아직 마을의 중심기능을 하는 느낌. 90년대의 제주 버스터미널을 보는듯 하다. 아직 버스가 중심 교통역할을 하고 있단 말일테다. 기쁨을 느끼며 천천히, 버스가 강서구에 있을 때부터 찾아둔 맛집을 찾아 걷는다. 서울처럼 크진 않아도 넓직한 공간을 다 돌아도 보이지 않아 화장실을 향하다, 알았다. 의외로 이곳은 2층에도 상가가 있고, 금문도는 거기에 있었다. 이미 2시가 넘은 시간. 3시에 닫는 맛집에 가려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갔다.



금문도. 3시에 문 닫는 데도 2시 넘은 시간에 50명은 웨이팅 중이네... 엄청나다..;



초상권 문제로 딱히 사진은 남기지 않는다. 실망할 틈도 없이 아까 돌 때 보아 두었던 백반 가게중 하나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버스가 드물어 환승 시간이 남긴 했지만, 밥 먹다 보면 어떤 일이 터질지 몰라. 서두른다. 콩국수가 걸려 있는 세 개의 가게. 전부 각자의 강점과 내공이 돋보여 망설이다 가정집백반을 고른다. 혹시 밥을 먹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콩국수가 끝물인지, 주문하니 이모님이 가벼운 농담도 주신다.

"날이 꽤 추운디...ㅎㅎ"

아침도 콩국수로 먹었다는 걸 아시면 깜짝 놀라시겠지...

내가 진짜 콩국수 탈레반이긴 한가 보다. 위와 소장이 콩국수의 교리 안에 하나된 목소리를 낸다.

9월 말에 두 끼 연속 콩국수라니.


맛집이라는 짬뽕집을 못간게 오히려 다행일 정도의 콩국수 맛이었다. 녹진하게 끌어올린 콩국물에 살짝 단맛이 돌아 맛은 한층 향긋하고 복합적이 된다. 국물을 살짝 먹어보고, 미리 뿌려주신 소금이 적당할 것이란 확신을 얻었다. 그대로 비빈다. 평소 소금은 넣지 않고 먹는데도...


킥은 흔하지 않은 재질의 굵은 면. 콩국물의 농도를 끌어 올릴수록 결국 면은 뒤로 밀려나기 쉬우니까. 확실히 이모님은 그걸 잘 알고 계신 분이시다. 맛잘알! 콩국물 맛을 보자마자 알아봤지. 고수의 손길. 첨 느끼는 맛있는 맛은, 미리 판단하려 하지 않고 따라가는게 옳다.


강화버스정류장의 가정식 백반. 앞으로 자주 오게 될것 같은 강화도. 올 때마다 들를것 같다. like it! love it!



완콩 하고 나니 버스 시간은 3분전. 급하게 계산하고 웃으며 뛰쳐나간다. 멀리, 타려고 맘먹은 62번 버스가 다가온다. 가볍게 뛰어 줄 끝에 안착! 나이스! 그러나 환승입니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버스가 드물어 환승에 실패한다니. ㅎㅎㅎ 재밌다. 아직도 버스 터미널이 동네의 중심 역할을 하는 것 까지! 마치 육지에 있는 항구 같다.



이제, 진짜 강화여행의 시작이었다. 조금 돌아가는 버스 앞자리에 몸을 싫고,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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