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티

by 지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의 나라 일이라고, 수도 없이 많은 나라들에게 금융 약탈을 자행하던 미국 내부의 문제라 떠넘겨 보려 해도 쉽사리 감정이 가라앉지 않는다. 언제나 이득은 시스템의 뒤에 숨은 기득권들이 취하지만,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과 노동은 좀 더 선량한자, 좀 더 성실한 자들이 지기 때문이다. 요즘 난 이차 세계대전 당시의 독일에 대해 생각중이었다. 전범국에 속해 있었더라도, 노골적이고 직접적인 이득을 취하지 않은 이상 그도 한 사람의 피해자란 생각들. 극우에 열광하는 최근의 한국 사회의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 본 이후부터 그런 생각을 받치고 있었을 수 많은 이유들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인간은 생각보다 이성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생존본능이 우리에게 남겨 놓은 것 중에는 소속감에 대한 욕구, 주변과 동화 되어 마찰을 줄이고 싶은 마음도 있다. '그'가 얻고 싶은 것은 한 조각의 마음의 위안. 국가에 소속되어 있고 아직 쓸모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소속의 욕구일 뿐이다.


윤 어게인 집회가 일어날 때면 나는 가끔 그들이 모인 곳 곁에서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곤 했다. 사회에 대한 불만, 많이 말해지는 구호. 그리고 어김 없는 자기 자신의 삶의 무게를 남에게 돌리고 싶어하는 약한 마음. 그들은 그런 것들을 서로 맞장구 쳐가며 으슬한 가을밤 새벽을 견디고 있었다. 그들이라고 밤샘이 만만하진 않으리라. 그런 고단함을 이겨낼 만큼의 어떤 감정들이 느껴졌다. 소외감을 넘고 싶은 마음.


이들은 스스로가 지지하는 시스템이 원활히 돌아간다고 해도 그다지 얻는 것이 없는 삶을 산다. 윤석열과 김건희가 고속도로를 휘고, 군함을 불러 회를 먹는 동안 이들은 알량한 마음의 위안 정도를 가졌고,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조금 꺼드럭 댔을 뿐이다.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대통령이라고, 내가 윤 어게인 이라고.


그렇다고 해서 반사회적인 행동들이 다 용서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슬픔을 봤다.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부 이해하지 못한 채, 새로운 민주주의적 질서의 사회 안에서 사는 군상들. 설 자리를 잃은 채 방황하는 소년, 소녀들. 철 들기 전부터 노동으로 삶을 이어오느라 '사회'를 제대로 들여다 볼 시간도 없이 살았고, 어느덧 쓸모가 부족해 졌다고 소외되어 버린 사람들.


정작 소외와 소외감은 신자유주의가 사랑하는 경쟁에 의한 것임을 그들에게 설파 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었다. 그들이 느낄 수 있는 건 정권이 바뀌었다는 것. 그리고 그 자신에게 익숙한 독재와 독선이 없는 대통령 집권기에 자신의 소외감이 커졌다는 것. 까마귀가 나는 것과 배가 떨어지는 것을 구분하지 못하는 정도의 잘못일 뿐이다.


거기에 그 마음의 빈틈을 노린 종교, 정치 선동가 들이 쉽게 남탓을 할 수 있는 말(같아 보이는 독)을 푼다. 바르게 생각하겠다는 마음만 내려 놓으면 누구나 편해질 수 있는 구조. 신자유주의가 낳은 오래되고 새로운 종교, 파시즘의 적층구조다. 사회와 정부가 관계와 연대의 의미를 잃어버린 만큼 오래된 신흥 종교인 파시즘은 맹위를 떨친다.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의 나라들 모두에서 극우주의가 부활하는 이유일 테다. 그리고 이젠 그 선봉에 한때의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이자 국제 질서의 슈퍼파워 였던 미국이 서있다.



K자형 경제를 이야기 할 만큼, 미국은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 식코(2007)때부터 의료보험은 위태로웠고, 러스트 벨트의 산업은 외주화(한,중,일 에게) 한채 금융으로만 나라를 유지한 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거기에 인공지능의 도래가 다시 한 번 매그니피션트 세븐과 나머지 기업의 격차를 늘려 놓고 있다. 나라 전체의 파이가 커진다고 SNP가 사상 최고가를 마구 경신하는 동안 나라 한쪽에선 일자리도 잃고, 삶의 의지도 잃고, 소외되어 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나마 있는 일자리마저 노동의 외주화(이민)로 값어치가 떨어지고 자리도 줄어든다는 것을 느낀 그들은 분노했고, 극우의 목소리에 환호했으며 트럼프를 재선 시켜버렸다.


우리에겐 이제까지의 세계질서를 반하는 관세부과 통보와 횡포로 드러나던 트럼프의 무도함이 미국 내에서라고 발생하지 않았을까... 그가 말하는 위대해질 '미국'에는 태초의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프런티어 정신이나 이민자 정신은 온데 간데 없다. 시민들을 자신을 지지하는 백인 미국인과 이민자 집단으로 가르고 상대방을 정치적으로 비난하는 것을 넘어서 구속과 추방이라는 물리력으로 실천한다. 사회로부터 받은 아픔이 정확히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잘 느끼지 못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은 다시 열광한다. 폭력이 생기고, 아픔이 발생하고, 단절이 일어나는 것이 각자에게 어떤 아픔인지에는 관심이 없다. 아마 그들이 아픔을 받을 때 주변에서 아무도 돕지 않았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상황이 한계를 넘어서, 드디어 사단이 일어났다.



한 사람이 온다는 것은 본디 그가 쌓아온 한 세계 전체가 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한 명의 바른 물리학도가 무리에 등장하면 집단 전체가 가진 과학적 지식이 올라간다. 한 명의 베트남 사람이 오면 그와 함께 수 십년간 갈고 닦은 베트남 요리와 문화 그리고 그와 연결된 사람들이 지역사회와 연결된다. 이전보다 가까워진 관계가 생겨난다. 이민이 일어나고 시간이 흐르고 사회에 정착한다는 것은 상당히 복잡한 화학적인 결합이 된다. 지역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 나가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겐 영원히 남는 관계가, 누군가는 외국에 간적 없이도 그 나라의 문화를 만나는 경험이 생겨난다. 그 모든 과정이 평화롭게만 이루어 진다면 좋겠지만 가끔은 이질감으로 인한 불편함이 생겨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민주적 과정의 흐름과 마찬가지로 이질감이 폭력이나 배제가 되지 않으면 언젠가 융화되어 찬란히 흐른다. 어떤 이유로든 이미 일어난 폭력이 반드시 우리에게 돌아오는 상처를 남기는 것처럼.


프레티는 그걸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앎을 실천하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그의 전 생애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대도 그는 충분히 그 품위와 태도로 자신의 신념을 대변하고 있었다. 이민자들의 추방을 반대하는 시위에서 카메라를 들고 폭력행위를 예방하는 행위를 하고 있었고, 여성에게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폭력에 맞서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몸을 던져 막아냈다.


총기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도 그것을 꺼내 미리 위협하거나 하려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다만 몸으로 막고, 카메라를 들었으며 후추스프레이가 뿌려지는 순간에도 위협하기보단 카메라를 들고 묵묵히 고통을 견뎠다. 그런 그를 수 명이 둘러싸고 땅에 내리꽂고 제압을 성공한 ICE. 영상에는 그들이 제압한 이후에도 분풀이를 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말리려는 주변 시민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프레티는 완전히 제압되어 있다. 그때 발견된 총( 총으로 말해지는 무엇, 진짜인지는 모른다). 영상에선 그 물건을 들고 나가는 사람까지 명확히 확인된다. 그러나 그 이후로 들리는 무차별적인 10발의 총성. 이미 제압되어 아무 동작도 할 수 없는, 공격성을 보인적 없는 시민에 대한 가혹한 행위. 눈물이 이미 책상을 가득 적시고 있었다.


나도 눈앞에서 약자가 폭력을 당하는 상황이라면 자연스레 마음이 움직였을 것이다. 지켜주고 중재하려는 시도를 했을 것 같다. 그런데 그처럼 움직일 수 있었을까? 용기 있게, 수가 훨씬 많은 총든 사내들 앞에 막아 설 수 있었을까?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순간 반응하고 대응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제대한 군인이자 사람을 살리는 간호사로써 일하는 사람이었다는 점이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위험에 앞장서고, 생명을 위해 빠르게 대응하는 일에 익숙한 직업. 거기에 그의 다정한 마음(짐작한 것이지만)이 더해져 숭고하고 바른 행위가 이어졌다. 그는 폭력에 의지하지 않는 강한 마음으로 상황을 대하고 있었다. 트럼프가 자기의 야망과 욕심을 위해 훈련되지도 않은 인간들을 요원이랍시고 마구 정치적 분쟁에 밀어넣는 동안에도.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 나였다면, 이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용기를 조금 냈다면 나 또한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10방의 총을 맞았을 테고 비겁했다면 치욕에 눈물을 삼키며 지금처럼 혼자 열폭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망설임이 없었고, 폭력앞에 의젓했으며, 자신이 믿는 다정함을 지켰다. 그런데 그 대가가 몸에 박힌 10개의 총알뿐인 세상이라는 것을 믿기가 어렵다. 그것이 한 때 모든 나라들의 선망의 대상이던 천조국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라니.


지금 미국에는 몇 십년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극심한 한파가 밀려온다고 한다.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고, 발전회사가 비상대책이 필요하다는 성명을 낸다. 이토록 추운 겨울에 눈을 맞으며 ICE와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도 을씨년 스럽기 그지없던 2025년(실제려 을사년이다.) 같은 일을 경험했다. 다만 잘 통제된 특수부대들이었던 탓에 함부로 총을 휘두르지 않아 죽은 사람은 없었고, 날씨가 올해보다는 따듯했다. 그런데도 얼마나 많은 핫팩을 써야만 했는지. 우주복을 입고 발이 얼지 않게 통통 뛰며 얼마나 많은 시간을 거리에서 보냈던지. 그때 우리의 아름다움을 온 세계에 전파하고 편이 되어준 외국의 언론들과 시민들이 없었더라면 우리의 겨울은 얼마나 더 추웠을지.



우리 모두, ''는 부족하기에 우리가 필요하다.

내가 온전하게 과거의 일들을 감당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에 대한 부채감을 품고 살아왔다. 가깝게는 제주 출신으로써 4.3 사건의 희생자들과 그와 강한 관계성을 가지는 여순사건의 희생자들. 어쩌다 동문이 되어 시집을 늘 품고 다니게 된 윤동주와 한 명의 대학생 친구가 없어서 몸을 불태웠다는 전태일. 그리고 광주와 세월호, 이태원 참사의 희생자들에 대한 미안함이 크다. 그리고 그건 아마 20살에 우연한 추천으로 읽게 된 체 게바라 평전(아직도 전부는 다 못읽었지만...)에서의 실천하는 양심을 보고 부끄럽다고 생각했던 탓일 테다. 그리고 나는 김대중 할아버지와 노무현 아저씨의 영광의 시대와 죽음을 경험한 시대를 지나왔다.


나는 오래 자신의 무력감에 고통 받는 삶을 살아 왔다. 그리고 작년이 되서야 조그만 희망을 봤다.비참한 자기자신을 느끼더라도 타협하지 않고 빛과 별을 이야기 할 수 있는 마음. 광장에 서있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가 하나의 빛이었고 스스로가 곁에선 사람들에게 건네는 다정한 빛의 춤이었다. 한 겨울의 광장에서, 나는 조금은 버거운 의무감과 책임감으로 인해 자리를 지키는 마음을 내려 놓을 수 있었다. 영원한건 절대 없다는 GD의 노래에 맞춰 엇나가는 권력과는 다른 각도로 조금은 삐딱하게, 그리고 다시만난 세계를 외치며 춤을추고 응원봉을 흔들었고, 빛의 무리가 되어 함께 떠돌았다. 그건 더 오래가는 우리의 방식이었고, 여러 사람들의 다정한 마음을 서로가 반사해 밝아지며 우리는 이루었다.


지금, 전세계에서 동시에 그리고 미국에선 가장 일어나서는 안되는 형태의 폭력들이 자행되고 있다. 우리가 타국민으로써 직접적으로 무엇을 해줄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나는 다만 여러분들에게 받았던 빛의 마음을 나의 방식으로 그대들에게 되보낸다. 각개의 나라가 극우와 폭력에 휘말려 무너져 갈수록 우리의 행복도 아주 조금씩 멀어져 간다. 이란에 대한 폭격이나, 우크라이나의 전쟁, 대만에서의 분쟁이 거세져 가는 것에 직접 무엇을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다만 보고만 있는다면 그 여파는 반드시 우리에게 돌아온다.


그저 그때처럼 응원하기를. 아직도 폭력과 배제에 맞서서 함께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분투를 응원해 주기를 호소할 뿐이다. 우리의 응원을 받고 일어선 대통령이 어제와 또 다른 대한민국을 만드는 모습처럼. 세계의 모두가 서로 힘을 낼 수 있게.


같은 말도 누가 말 하는가에 따라서 무게감이 달라진다. 빛의 혁명을 이뤄낸 우리가, 무능하고 어리석은 독재의 시도를 막아낸 우리가 자신감 넘치고 흥이나는 목소리로 세계에 말할 때가 되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따듯하고 다정한 그때의 동료시민들, 그 마음을 믿는다.


“결국 정치는 사람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일이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현실을 고민하셨다” - 이해찬 전 국무총리에 대한 조문에서 강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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