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팔락시스

by 지음

나이 서른 셋. 첫 알러지가 생겼다. 알러지인지 아닌지, 어떤 알러지인지 정확히 알아내는데는 1년여가 더 걸렸다. 그러니 당시 시점으로는 이렇게 써야 맞다.


"햇살 맑은 샌디에이고의 해산물 전문점, 식사는 맛있었다.

그날의 오후를 설사와 함께, 기차역의 화장실에서 다 보낼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해물찜이라 함은 고춧가루만이 답인 줄 알았던 생에, 시원한 맛나는 토마토 해물탕은 별미였다. 깔라마리[^1]스타일로 컷팅한 두툼한 오징어에, 두 종류의 새우. 가리비와 바지락 사이로 반으로 갈라진 게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마늘이 들어간듯도, 오레가노 바질이 아닌 새로운 허브도 느껴지는 토마토 베이스는 완벽했다. 고추 없이 칼칼했고, 맵지 않게 풍성했다. 문제는 그 풍요로움에서 발생했다.


풍요로움이 좋게만 작용한다면 좋은게 좋은 상황이지만, 안좋게 다가온다면 나쁠때 더 나쁜 꼴이 된다. 모두의 풍요가 내게만 다르게 느껴진다면 상황이 더 안좋다. 풍요속의 빈곤이 아니라 풍요로 인한 빈곤이 시작된다. 그때 처럼. 이해되지 못한 알러지도 이와 같은 경우에 속한다. 모두 만족했는데(나도) 나의 뒤끝만이 좋지 않은 경우. 문제가 생겼는데, 원인이 복잡해 한, 두 사례만으로 공통 원인을 찾아내기 힘든 경우. 풍요의 낭패다. 웅장함이 살아 있는 중앙 지하철 역에서, 감상할 겨를도 없이 두 시간. 화장실에 앉아 고민했지만 답을 알 수 없었다. 너무 다양한 것을 섭취 했다.


라멘 한 그릇도 14.98달러, 스시 한 판에 20달러지만 스테이크를 마트에서 구입하면 7.49 달러. 2명이 먹을 만큼 살 수 있는 나라. 겨울의 한 달을 제외하곤 비 없이 온화한 날씨. 자연 그대로는 가물어 황야에 가깝지만 현대 운송, 도시 시스템에 힘입어 미국에서 살기 좋은 도시 1위로 선정된[^2] 샌디에이고. 그러나 학생격 존재의 생존엔 어려움이 많았다. 세 개 마트의 최저가를 습관처럼 비교 하고 다녔다. 그렇게 보낸 몇 달, 오늘은 모든걸 잊고 맘껏 먹자고 시작한 만찬. 간만의 식사다운 식사를 풍족히 즐기지 않을 도리가 없다. 밥상 앞에 숟가락이 꺾여본적 없는 33년 인생. 경제적 압박에 움츠렸던 위장을 펴고 100만 대군[^3]을 뚫고 지난 조자룡마냥 해물위를 종횡했다. 날카롭게 해물의 요소 요소를 헤집어 대는 나의 삼지창과(포크다) 나이프를 보았던 동행인은 말했다.


"그렇게 퍼 먹다가 내 그럴줄 알았어. 정말!! 같이 차 보러 가준다며!!!"


종류의 풍족과, 양의 풍요를 모두 담은 배를 안고 진짜 목적을 향해 출발하던 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깔끔한 경제대국의 상점가에서 전조증상이 찾아왔다. 이립. 울렁하게 나오려는 것이 물똥인지 방구인지 구분 할 수 있는 나이. 첫 방구의 축축한 관통이 촉촉한 감각을 괄약근에 전달했다. 아! 이건 설사다. 큰게 왔다... 칙!촉!칙!촉, 기우는 햇살과 함께 늘어졌던 시간이 다급하게 흐른다. 횡단보도 신호등이 영원처럼 길다. 힘을 주며 참는 것 만이라면 괄약근을 믿어봄직 했건만, 동반된 복통이 심상치 않았다. 설사도 복통을 데리고 다니지만 이건 체급이 달랐다. 적어도 장염, 아니 그 이상. 식중독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통증이 밀려왔다. 고통에 몸을 움츠리니 뒷 근육에 힘이 풀리려 했다. 식은땀이 흐르는걸 옆의 사람도 느꼈다. 허리를 펴지도 못하자 원망이 가득하던 그녀의 눈동자에도 공감의 고통이 어렸다. 마음은 급한데 처음 나와보는 다운타운. 공공시설이 어디있는지 알지 못해 마음만 갈팡질팡. 바빳다. 짧고, 거친 사고끝에 15분 걸어야 하지만 화장실이 담보된 전철역으로 방향을 정했다.


아픔이 크레센도 되어 갈 수록,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커녕 시민의 체면까지 던져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다. 하도 애처로운 눈빛으로 올려다 봐서일까, 곁을 지키던 그녀는 혹시나 있을 주변 화장실을 찾는다며 여기 저기 건물을 수색하듯 뛰기 시작한다. 한 겨울 산수유를 따러 간 이를 바라보듯, 저 멀리 뛰다니는 그녀를 바라 보며 종종 대는게 나의 한계. 길잡이 마저 없었다면 나는 마음을 지키지 못했으리라. 찢어지는 배를 기워 잡고 희미하게 보이는 그녀를 따라 발을 옮겼다. 올 땐 15분 정도였던 거리가, 30분이 넘게 걸렸다.


유튜브 숏츠로 미생을 감상한 바에 따르면 이렇다. "체력이 약하면 편안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인내심이 떨어지고, 또 그 피로감을 견디지 못하면 승부따위는 상관 없는 지경에 이른다. " 인내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체급이 다른 고통이었다. 통풍 걸린 발에서 느껴지던 만큼의 통증이 배를 때려댔다.[^4] 20분쯤 지났을 때부터 주변 풍광과 건물들이 노래졌다.[^5] 싸버릴까? 팬티 한 개와 약간의 수치심을 견디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싸버리자! 그래! 라고 하는 내 손을 이끄는 따듯한 손이 없었다면...


나는 야수의 심정으로 팬티에 팡!팡! 쌀뻔 했다. 선진 시민들 사이에 나 홀로 짐승, 일 순 없었다. 다정한 사람마저 나와 함께 떨어지지 않겠나. 팬티를 지키는데 모든 힘을 쏟았다.


다정함은 사람만이 아닌, 팬티도 지켜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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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럽식 오징어 튀김. 썰려 나오는 경우도, 통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O"링 모양으로 두툼하게 썰려 나왔던 그리스 버전(항상 그리스에서 그렇게 나왔던건 아니다.)이 가장 기억에 남아 개인적 감상으로 적었다. 모든 깔라마리가 그렇게 나오지 않아 피치못한 혼선이 빚어질 것이라 생각된다. 스만.


[2]: 하와이에서 10여년 거주하시다 UC 샌디에이고 뒤에서 일식라멘집을 하시는(여기 진짜 맛난다), 한국인 여주인 분의 말에 의하면. 굳이 정확히 몇 년도에 어느 기관이 선정했는지를 캐묻지는 않았다. 양식 있게.


[3]: 실제로는 10만 정도로 이야기 하는 사람들도 있고, 사료도 있다더라지만 역사적인 기록에 의한 과장은 과장인듯 과장아닌 부장같은 느낌이다.


[4]: 통풍 걸려 부은 발을 끌고 기말고사 양자역학 시험을 치른 적이 있다. 진통제를 맞고서 4시간의 정규 시험시간을 채우고 1시간이 더 주어진 추가시간까지 더 풀것 없는 시험지에 보충 설명을 적어놓았다. 점수에는 반영되지 못했다.


[5]: 실제로 해질녘 무렵이어서 그랬을 뿐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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