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는 새우의 편이 될 수 있는가.
못 먹게 된 새우만을 아쉬워 하던 어느 날.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반대로 이건 어떤 감각이 새로 생겨난 것일 수 있지 않을까? 새우깡에 들어 있는 미량의 새우맛을 혀로 느끼는 것은 어렵지만, 내 경우엔 복통을 통해 새우를 정확히 느낄 수 있다. 이건 심한 복통. 통각의 일종이지만, 새우만을 감지해내는 센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공기중의 미세먼지를 측정하는 기능이 있는 공기 청정기 처럼, 방안의 온도를 측정하는 보일러 리모컨 처럼. 기능이 생겨난 거라고.
그걸 후각, 미각에서 따온 각을 바로 붙여 새우각이라 만들면 촌스러우니, 일단 갑각이라 명칭하기로 했다. 사전에서 배운대로 새우 알러지는 조개, 게 등의 패각류나 갑각류 알러지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내게도 그 가정을 적용하고 있었으니 그것이 더 나의 진실에 가까운 단어기도 했다.
그러다 궁금해졌다. 세상에 수도 없이 많은 갑각류들이 살고 있는데. 가재는 게편이란 말처럼 정말 모두 긴밀한 인척 관계에 속하는 것일까? 나에겐 새우의 편인가 아닌가를 '갑각'하는, 분류학적 과학지식과는 상관없는 감각이 생긴 참. 그것을 테스트 해봐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많은 수의 새우 알러지 선배들의 수기를 보아도 누구는 게도 먹을 수 없고, 누구는 조개를 먹을 수 없다는 등 애매 하게 걸쳐있는 벤다이어그램[1]이 산재해 있었다. 잘만 된다면, 배제된 세계에서 게의 족속들만은 건져낼 수 있을 터. 게장과, 게딱지밥, 게맛살의 부활을 위해서 감수 해볼 만한 것이란 생각이었다.
결심을 품고 다닌지 1년 하고도 반. 극심한 통증 때문에 그래도 망설이던 나에게, 운명의 그 날은 찾아오고 말았다. 많은 지인들이 모이는 반은 공적인 자리. 누가 배제 당하는 일이 적은 한정식집을 장소로 정하여 둘러 앉은 곳에서, A 형은 말했다. 이 집은 다 괜찮지만 게장이 아주 끝내주는 집이라고.
나는 직감했다. 여기구나. 다른 맛있는 것들이 가득 있는 곳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어봐야 하는 그런 때를 기다렸다. 아무리 죽은 게들을 살려내는 숭고한 전쟁이라 하더라도, 퇴로를 모두 잃은 식당에서 내몰리듯 게밖엔 답이 없어 선택하고 싶진 않았다.
우아하게, 음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지만. 특별한 맛이라 하니 우리 한 번 입에 넣어 볼까요? 하는 느낌으로 먹고 싶었다. 좋다. 비장하게 젓가락과 숟가락을 같이 들고 게장의 작게 달린 다리 하나를 집어 북 뜯어냈다. 그 와중에도. 쫄았던 나머지.
같이 나온 보리차인지, 무슨 차인지 잘 느끼지도 못한 차를 입에 털어 넣는다. 앞 접시에 홀로 정갈하게 올려져 있는 게 다리를 바라보며, 침을 한 번 더 삼킨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굳이 알러지 약을 처방 받은 뒤 먹을 생각을 안 했는지 바보 같지만, 당시엔 비장했다. 그 친숙한 맛. 시장에서 엄마가 사온 그 맛. 일주일 밥반찬을 한 끼에 다 먹었다고 등짝을 맞았던 맛. 지금 다시 만날 수 있다. 조심히 집어 입으로 들어 올린다. 지금 만나러 갑니다!. 음... 맛있다!? 라고 할 새도 없이 간장 게장은 목을 미끄덩 미끌려 내려가 버렸다. 간간하고 맛이 좋은 것 같긴 한데, 너무 작았다. 특별한 느낌이 나기도 전에 훅 지나가 버린, 나의 게장.
주사위는 이미 던져 졌고, 게의 다릿살은 이미 침샘의 강을 넘어 흘러갔다. 이후로 나타날 증상을 예민하게 느끼려고, 사라져 가는 떡갈비와 산적들을 바라보기만 하며 10분간 밥알을 깨작댔다. 지분지분 씹어가며 얕은 단맛을 끌어내며, 지루한 기다림을 견뎌내며. 이제 곧 식사는 불고기와 회, 찌개류 등이 나오며 절정을 향해 갈 것인데. 홀로 초조하다. 2분, 5분, 10분. 아직 온전한 결과가 나오기엔 이른 시간이지만 완벽하게 고요했다.
새우깡을 먹고 기다리던 1차 실험에선 뭔가 미세한 미식거림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없다. 결론을 내리기엔 일렀지만, 결심을 굳혔다.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만약 아프더라도, 나는 먹고 죽겠다. 기깔난 때깔을 위해서. 살짝 스치고 지나간 게장 간장의 풍미는 아직까지 달달하게 혀를 멤돌고 있지 않은가. 불고기를 한 입, 되장국을 말아 밥을 한 스푼 야무지게 먹고 나서. 커다란 게딱지로 젓가락을 가져갔다. 해맑은 얼굴로.
그리곤 아무일도 없었다. 게와 새우의 견고해 보이던 동맹을 끊어내고 내 편으로 끌어내기 위한 전투는 싱겁게 끝이 났다. 게는 아주 순순히 투항했고. 간장 게장 4쪽과 양념 게장 3쪽은 유순하게 소화되어 세상의 거름으로 변기를 통과해 정화조로 넘어갔다. 내 갑각에 의하면 게는 가재의 편인지는 몰라도 새우의 편은 아니었다.[2]
[1]: 그 집합 할 때 나오는 그거. 서로 공통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나누는 표 같은 것.
[2]: 모든 갑각류 알러지는 저마다의 증상(입 붓기, 토사 곽란, 설사)을 가지고 패류도 먹지 못하는 경우와 나처럼 서로 다른 갑각류는 섭취 할 수 있는 등의 증상과 증세가 다양하다. 실제 나의 동생도 새우에 입술이 붇는 증세가 있지만 삶으면 먹을 수 있는 등의 특이 점이 있고, 여타 알러지를 가진 다양한 블로그를 탐색해 본 결과 계통도 그다지 없는 다양한 증상과 못 먹는 것의 차이가 있었다. 혹여 알러지를 알아본 사람들이 그럴 생각을 하진 않으리라 믿지만, 나의 이 게 섭취 글을 보고 느닷없이 게장을 흡입한다던가 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