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높히 Aug 13. 2021

자네는 행복한 일이 직업 이었던 적이 없었나?





매일 쳇바퀴처럼 지루한 일상에 나는 지쳐 있었다. 어느덧 29살 되었고, 20대 초반부터 안정적인 직장에 입사해 좋은 조건으로 회사를 갈아타길 두 번, 어느덧 익숙한 업무와 일상에 지루함을 느꼈다.

결혼을 한지 얼마 안 되어 신혼집은 수원에 자리 잡았다. 서울에 오랜 기간 부모님과 함께 살며 직장생활은 전부 서울 간의 출퇴근이 전부였고,  그래서인지 수원에서 을지로까지의 출퇴근도 제법 힘들었다. 그래서 더 지쳐있었다.


그때 내가 심취해있던 루틴은, 바로

퇴근 후 집에 와서 남편의 잦은 야근으로 저녁밥은 혼자 해 먹으며 텅 빈 거실에 앉아 그 시간 때맞춰 하는 달인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이 그렇게 하루의 마무리를 지으려고 했다.

그날은 유독 너무 지쳐있었고, 또 전날 과도한 업무의 스트레스로 혼자 남몰래 회사 화장실에 앉아 눈물로 억울함을 토해냈기에 더 그랬다.

 간혹, 그런 날이 있었다. 일 년에 한 번에서 두 번.. 너무 힘들 때 내 잘못이 아닌데 너무 억울하게 당하고 있을 때, 나는 그렇게 자존심을 억눌러가며 버티고 회사 화장실에 앉아 남몰래 숨죽여 꺼이꺼이 울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혼자 퇴근했다.


그렇게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밥 차릴 힘도 없어 물 말을 밥을 김치와 마른반찬을 얹어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근데 마침, 티브이에는 반찬가게 사장님이 나왔다.

"오늘의 달인은 반찬가게 사장님인가 보네"

별생각 없이 입으로 물먹은 밥을 욱여넣으며 내용을 중간부터 보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비법 아닌 비법, 노하우, 정성, 그 모든 것을 갈아 부은 한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나도 주부지만.. 진짜 힘들게 반찬 하시네, 3배의 정성을 쏟잖아.. 된장 고추장은 고사하고, 소금까지 만드는 사장은 처음이네'라고 생각할 때쯤, PD가 때마침 얘기한다.

"사장님, 이거 너무 죽 노동이네요? 이거 왜 하세요? 너무 힘들지 않으세요? 아오 대단하신 분들 많이 나오지만 사장님 정말 지독하시네요"

들으며, 어 내가 생각한 말인데 촌철살인 장난 아니네 라고 생각했다.

그 찰나에, 그 TV 속 주인공인 사장님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이렇게 얘기했다.


"PD양반, 아직 젊어서 잘 모르는 건가? 자네는 행복한 일이 힘든가?

행복한 일이 직업이 되면 힘들지 않아, 그런 일을 아직 해본 적이 없나 보네?"


순간 나는 망치로 퍽, 하고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글로 옮겨도, 눈물이 고일만큼 심장이 울렁.. 일렁.. 쿵? 글쎄, 어떤 말로 대신할 수 있을까, 이건 태어나서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다.


아주 여러 가지 감정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회사를 다니며 그 일을 맡아 최선을 다해, 내 몫을 다해 내면 일은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했다.

일은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돈을 만들어 내는 수단이라고만 생각했다.

대학시절 자기 계발 관련 도서를 수도 없이 읽으면서 나온 이 구절은, 그냥 하나의 겉치레 파트라고 생각했다.


그와 동시에 '난 지금 것, 회사를 다니면.. 내가 하는 일을 통해 행복이라는 걸 느낀 적이 있었던가, '


그런데 그 PD도 당황한 것처럼, 한동안 말을 이어나가지 못했다.

나와 느끼는 바가 같았음이 느껴졌다. 갑자기 난생처음 느껴보는 감정.. 뭔지 모르는 마음속 일렁임과 후회, 자괴감, 슬픔이 몰려오며 눈물이 맺히더니.. 그 눈물은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고 뭐에 홀리듯이 나는 갑자기 엉엉 목을 놓아 소리 내어 아주 서럽게 눈물이 났다. 어제 회사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숨죽여 울던 그 많은 눈물과 아주 다른 형태의 눈물이었다. 어제 많이 울어서 더 이상 한동안 울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주 당혹스러운 감정의 것이었다. 나는.. 한참, 물먹은 밥알이 입안에 고인 채로 울었다.


그런데 여기서 너무 웃긴 건, 다 울고 날 때쯤.. 도대체 어디서 솟아난 감정인지 알 수 없는 아주 상반된 느낌의 희망참이 어디 선거 스멀스멀 기어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대학 친구들의 단톡방에 톡을 보냈다.


-너네 지금 달인 TV 봤어?


-아니 왜? 왜 또 뭐 나왔는데 어디가 맛있데?


평소에 맛집을 좋아하는 나에게 던진 그녀들의 답장, 역시나 뻔한 얘기였나 보다. 내가 던 지 달인 TV 얘기는,

그렇지만 나는 그녀들의 예상을 깨고 이렇게 말했다.



- 있잖아. 나 오늘부터 무조건 내가 행복한 일 할 거야.


나 방금 티브이에서 너무 힘들게 반찬 만드는 아주머니가 나왔는데,

나도 보면서 도대체 저렇게 까지 왜 하냐고 생각할 때 피디가 그렇게 물어봤거든.?

근데 너무 해맑게 웃으면서 피디한테 그러는 거야

자네, 아직 행복한 일을 직업으로 삼아 본적이 없는구먼 이라고.


나 근데 너무 눈물이 나는 거야, 왠지 모르겠는데.. 이 마음이..

엉엉 울고 나서 드는 생각은,

왜 나는 그러면 안 되는 거지?


그래서. 있잖아



얘들아. 나 오늘부터 무조건 내가 행복한 일 할 거야.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