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念思慮想
새벽에 일어나 어스름한 창밖을 바라보면 기분이 묘하다.
어린 시절, 이 무렵쯤,
추석 명절이 다가오면...
명절에는 늘 밀리는 버스를 타고 시골의 큰 댁에 갔었다.
그때 아궁이의 군불에 쩔쩔 끓는 아랫목에 발을 두고 누워 자다가, 흥분과 긴장감에 저절로 일찍 일어나 머리 굵은 사촌들과 같이 걷던 시골길은 이미 해가 조금씩 돋고 있었지만, 사방은 어둑어둑했었다. 발길에 스치는 들쭉날쭉 싱그럽던 풀잎들엔 방울방울 이슬이 맺혀있고 그 옆에 주르르 선 나무들조차 그림자빛깔로 잡히지 않을 듯 멀리 서 있었다. 주변이 온통 오늘 같은 어스름이 아직도 남아있었던 같다.
한참 걸으면서 갔던 길을 따라 다시 집으로 돌아오ㅡ는 길에,
기억하던 밤나무 아래까지 걸어가서 가서 기어이 밤을 찾다가 앞부리가 이슬에 젖은 운동화를 바라보며 주머니의 밤 몇 알을 만지작 거리며 슬며시 미소 지을 때, 다시 피어나려고 꽃몽오리 아래쪽부터 살짝 부풀어 오른 나팔꽃들을 보며 와ㅡ 하고 소리쳤던 기억난다.
산책처럼 길을 걸으며...
갈 때는 안 보이던 게 올 때 보이면 보일 때마다 그렇게 와ㅡ하고 놀라워했는데...
다 자란 지금은 그런 소리를 낸 기억만 간직하고 산다.
아주 이른 새벽에 일어나 해뜨기를 기다려보니 해뜨기 전에 잠깐 다시 사방의 명도가 어둡게 달라졌다가 다시 밝아진다.
이런 걸 보면 마치 이 지구가 어딘가 우리가 모르는 그 한계도 잘 모르지만 존재하고 있는 더 커다란 방 속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 같다. 마치 방에서 밖으로 문지방을 넘을 때 살짝 생겨나는 그림자처럼 그렇게 살짝 생겨나는 어둠 같다. 그 방은 어떤 모양일까? 본 적도 없는 둥글다는 지구처럼 둥그렇게 생겼을 까?
상상으로도 상상이 안 되는 건 이미 굳어진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해가 뜨기 전 명도의 변화는 새벽에 해뜨기 전, 그러니까 아주 이른 새벽에 일어나 주변을 찬찬히 느끼며 일을 하거나 혹은 가만히 바라봐야 알 수 있다. 그 새벽에 일어나 그렇게 찬찬히 주변을 바라볼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생각보다 많을 듯싶다. 바닷일, 농사일을 하는 분들은 다 알지 않을까?
누군가는 이미 알고 계셨다. 그래서 이런 말을 남겼지 않겠는가?
옛 말에 '해가 뜨기 전이 제일 어둡다'...라고
It's always darkest before the dawn. 이건 미국 속담이다.
새벽이 오기도 전 가장 어둡다는 말과 해뜨기 전 제일 어둡다는 말은 뉘앙스가 좀 다르지만 같은 말같이 들린다. 새벽이라는 영어 단어 dawn은 dagian이란 고대의 영어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데 그 뜻은 낮이 되다라고 한다. 새벽은 해돋이 전 박명이 시작되는 시간을 말한다는데,
대체 박명이 뭔가 하니, 간접적인 햇빛이다. 재미있는 단어이다.
그런 의미론 새벽이 오기 전은 한 밤중이다. 실제로는 새벽이 오기 전 달 없는 한밤중이 제일 어둡다.
그냥 해뜨기 전 한번 주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는 걸 그렇게 표현한 건 아닐까라고 추측하게 되는 까닭은 그냥 일상의 자연적 현상이 일상인데도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 현상이라 그렇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어두운 밤을 굳이 어둡다 하는 게 이상해서 그렇다.
빛이 서서히 밝아지는 새벽 다시 어두워질 일이 무어란 말인가라고 의아해하겠지만,
새벽이 오고 있을 때 그 새벽의 그 빛이 생겨나는 어스름 중에서도 해가 눈에 보이게 뜨기 전 사방은 다시 어두워졌다가 밝아진다. 지나치기 쉽게 아주 잠깐 말이다.
밤은 이미 제일 어둡지 않은가 말이다. 그러고 보니 무언가 좀 애매한 말 같다. 그냥 우리나라 어른들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다고 하기조차 애매한 건 새벽은 이미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해가 뜨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새벽은 이미 빛이 있는 시간이다. 그러니까... 뉘앙스타령하기도 그렇지만, 경험해 보니 좀 다르다.
글을 적으며 이생각에 저생각이 꼬리를 물더라도, 애매하든 정확하든 있는 말을 기억하게 하는 현상을 만나면 그냥 이런 생각이 먼저 든다. ㅡ 속담은 그러니까 경험적인 문장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