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말이지, 말이야, 말일 뿐이야.
문화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사람이 곧 문화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산다는 말이다.
그건 규제를 한다고해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훔쳐간다고 해서 자기 것이 될 수 없는 종류의 무형자산이다.
오래 같은 환경에 산다고해서 당연히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갖고싶다고 소원한다고 해서 가질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아무리 오래 전에 그런 무형의자산을 빼앗겼다해도
그건 가져간 사람이 아무리 자기것이라고 우겨도 빼앗긴것이라는 꼬리표를 뗄수가 없으며
또한 아무리 오래되도 보이지 않더라도 그렇게 표현된다.
바로 그것이 문화이고 역사이다.
아무리 새로 써봐라, 마치 컴퓨터의 파일위에 덧입혀 새롭게 만들어냈다해도
원래의 것은 어딘가에서 민들레 씨앗처럼 영원히 흩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미국은 이미 다문화국가이다.
미국만큼 자유롭게, 다문화국가인 곳이 또 있을까?
큰 도시에 가면 사람에 따라 문화가 형성되어있고
문화가 특징적일수록 그런 커뮤니티사회가 반드시 존재한다.
그러나, 문화는 상당히 다루기 어렵다.
사람이 만들어 내는 문화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다.
문화를 가진 건 사람이지 문화가 사람을 가진 게 아니다.
억지로 만들수는 없지만 환경을 억지로 조성할수는 있다.
그러나 들에 피어나는 꽃들처럼
결국은 그 자신의 특성대로 자라날 수 밖에 없는 것이 바로 문화이다.
사람이 곧 문화가 되는 현실은 그냥 말 그대로 이 삶의 원칙같은 것이다.
문화는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서 사람이 그 문화를 받아들이기 싫어하면,
그 문화는 더이상 그 문화를 거부하는 사람과 같이 가기가 불편해진다.
그러나 거부하더라도 어딘가 그림자처럼 머무는 본래의 자신의 것이란
사실 본래의 자신도 모를 때가 더 많다.
싫어도 머물수 밖에 없고
좋아도 바라볼 수 밖에만 없는 그런 특성때문에 문화는
각각의 사람마다 어쩌면 보이는 형태이든 보이지 않는 형태이든
울타리처럼 자신을 보호하거나, 혹은
부딪혀 다치거나 부딪혀 깨야 할 어떤 벽을 세우고 만드는 느낌이 있지만,
대개는 그 문화와 자신은 많이 닮기 마련이다.
갑자기 생각이 난.....
아주 어린 시절 옛날에 읽은 소공녀에는
내가 아는 유명한 분과 같은 이름을 지닌 마음이 따뜻한 꼬마 신사가 나온다.
주인공 세라는 갑자기 모든 걸 잃게 되지만, 세라 자신이 지니고 있던 품위는 잃지 않는다.
자신이 지니고 무형의 자산, 품위.
세라는 아무리 힘들어도 사심없이 남을 돕는 고운 마음과
어려운 환경이라해도 스스로를 품위있게 만들고 있는,
바로 자신만의 문화는 언제나 잃지 않고 갖고 있다.
품위는 자신만의 문화가 된다.
그것은 아마 죽게 되더라도 지니고 갈, 자신만의 것일 것이다.
어리더라도 이미 세라는 자신의 문화가 아름답게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아는 이름에서 만날 수 있는 재미있는 우연같은데,
어쨌든 그 어린 꼬마신사는 어려움에 처한 어린 세라,
소공녀를 도와주고 소공녀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 꼬마 신사에게는 어린 아이가 갖기 힘든 그런 마음과 행동이 사람의 마음에 공명을 주는 점이 있다.
그런 점은 하나의 고립된 점과 또 다른 하나의 점을 잇는 중재자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문화의 완충지대는 그래서 대부분 자유롭게 열려있고 또한 자비 관대하다.
사실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신사란 말은 아무에게나 붙이는 명칭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양반전에 나오는 양반처럼, 양반전을 읽어보면 정말 읽으면서 입이 딱 벌어진다.
양반이 정말 이랬을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랬을 거라는 추측이 무척이나 가능하다.
내가 아는 한 양반가의 어른은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인데도
일 할 수 있는 며느리가 밖에 나가 일하는 걸 양반이라는 이유때문에 반대하고 혼냈었다.
현실에서 더블이 되는 어려운 현실은 아마 이런 걸 것이다.
일을 해야 가족이 먹고 사는데 일을 할 때 도움을 받기보다
오히려 방해를 받는 다면 인생이 얼마나 더 고달프겠는가.
그래서 문화는 장벽이 존재한다.
그 장벽은 때때로 높지만,
고귀한 마음과 관대한 연민의 마음은 그런 장벽을 가지고서도 사람사이를 잇는다.
어쨌든 선비나, 양반 그 이름에는 현실생활에서 얻기어려운 실행의 어려움이 같이 존재한다.
아무나 선비나 양반이름을 못 얻는 이유는 그 호칭이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 때문이다.
신사란 결국 그 태도와 마음이 신사이어야 신사가 되듯...
조건이 맞아야 가능한 이름도 존재하는 것이다.
그 신사란 말은 바로 또 사람이 지닌 문화를 나타낸다.
한 가정에서 받는 교육과 환경이 만들어내는 문화는 그래서 아주 중요하다.
한 사람의 문화가 되기 때문이다.
문화는 항상 바람앞의 등잔불같이 위태하기도 하다.
그건 사람의 성격에 달려있는 문화일수록 더욱 그렇다.
누군가는 그 문화의 장점을 탐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반드시 그걸 이용하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마음이 따뜻하고 정의감이 지나치며 어린아이같은 심성을 지닌 똑똑한 신사는 자신만 안다고 자신하는, 그러나 다 보여지는 자신의 마ㅡ음때문에 타인의 표적이 되기 쉽다. 그 주변에 어떤 사람이 존재하는가에 따라 그의 행동은 좋은 영향이든 나쁜 영향이든 어떤 영향을 받게 된다. 그것도 결국 그 사람의 문화가 된다.
그러니 문화란 사실 사람과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