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Confiance

자신감을 얻는 방법.

by Rose in paris



‘Est ce que je peux travailler ici?’

[제가 여기에서 일 할 수 있을까요?]


나는 곰곰히 생각에 잠길때면 바람을 쐬며 걷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기에 자그맣고 예쁜 파리는 정말 더없이 좋은 도시이기도 했다. 멍하니 풍경을 바라보며 발 닿는대로 무작정 걷기에 이만큼 아름다운 도시가 또 있을까. 그 날도 역시 시끄러운 머릿속을 잠재우려 멍하니 걷던 날 중 하루였다.

머릿속에서는 파리에서 전공을 살려 플로리스트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중 이었다. 너무도 막막한 일이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 프랑스에서? 아니, 그렇다고 안 해? 프랑스에 온 이유가 꽃을 배우기 위해서인데..나는 지금 뭘 하는거지? 정말 어떻게 해야할까..’

머리를 감싸쥐고 고민만 하고 있는다고 해서 해결되는 문제는 없다는 걸 안다. 내가 무엇이든 시도를 해야 삶에 변화가 온다는 것도 물론 안다. 또다시 용기를 내야 할 때란걸 알았지만 머리로 안다고 해서 없던 자신감이 갑자기 생기는 건 아니었다. 생각이 많아지고 복잡 해 질수록 고개는 움츠러들고 발걸음은 빨라지는 편인데,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나는 어느새 경보 수준으로 낯선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나의 고개를 들게 만든건 다름아닌 플라워숍이었다. 빠른걸음으로 지나쳐 갔다가 어렴풋이 보인 플라워샵에 ‘어랏!’하고 멈춰서서 다시 뒷걸음질을 몇번 했다. paris에서는 흔하지 않게 2층정도 되어 보이는 큰 규모의 부티끄였다. 부티크 입구에는 작은 테라스가 있어서 많은 식물들이 나와있었고 뽀글머리의 익살꾸러기같은 이미지를 풍기는 한 아저씨가 길다란 호스로 시원하게 물을 주고있었다.


‘와~ 여기 정말 크다..이런 곳에서 일 해 보면 얼마나 좋을까...내가 할 수 있을까? 프랑스어를 잘 못한다고 퇴짜를 놓으면 부끄러워서 어떻게 하지? 시크하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근데 뭐라고 말을 붙여야 하지? 너무 무서워..그냥 갈까? 아니야 이대로 말도 못 꺼내면 난 정말 패배자가 되는 것 같은걸...’

정말 짧은 시간이었다. 내 머릿속에는 내가 적어도 다섯명쯤은 살고 있는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많은 생각들이 순식간에 쏟아져나왔다. 앞으로 전진하지도 후진하지도 못 하고 우물쭈물거리며 어정쩡하게 서 있던 내가 눈에 밟혔는지 아저씨는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bonjour mademoiselle~ 뭐 필요한게 있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렴. 안에 들어가서 구경해도 좋아! 안사도 괜찮단다 하하하”

‘bonjour monsieur[남자에 대한 존칭] , 부티끄가 너무 예뻐서 구경하고 있었어요.파리에서 이렇게 큰 부티끄는 처음 보거든요”

“하하 그렇지? 거기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안쪽으로 들어와서 구경 해 보는게 어때?”


주인아저씨의 친절함에 힘입어 부티끄 안쪽까지 발을 들여놓는데 성공했다. 나의 심장은 두근두근 터질 것만 같았다. ‘그냥 진짜 구경만 하고 나갈까? 아냐 여기까지 들어왔는데..아저씨도 친절 해 보이는 걸, 그치만 갑자기 일을 시켜달라고하면 내쫒지는 않을까? 손님인 척하고 속였다고 말이야..그래도 여기까지 발을 들여 놨는데 그냥 나갈 수는 없는 거 같아. 그래 눈 딱 감고 한번만 질러 보자!’ 그때 나는 아마 꽃을 구경하는 척 하며 허리는 숙인 채 굳은 표정으로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고 있는 아주 이상한 모양새였을 것 이다. 나는 정말 불현듯 고개를 치켜들고 옆에 서 있던 아저씨에게 말했다.


“Est ce que je peux travailler ici ?” [제가 여기에서 일 할 수 있을까요?]


속으로 수없이 되내이던 문장 이었다. 어찌나 마음이 급했는지 거두절미하고 본론 한줄만 달랑 내뱉어 버렸다. 수없이 생각만 했던 문장을 처음 입 밖으로 선보이는 일은 아주 뿌듯하면서도 긴장되는 일이었다. 잠깐의 정적도 내게는 너무도 길게만 느껴졌다.


“돈을 받고 하는 진짜 일을 말하는건 아녜요..저는 일단 이 일을 체험 해 보고 싶어서...혹시 옆에서 보게만 해 주셔도 감사할 것 같아요...”

“플로리스트니?”

“네 앙제에 있는 피베르디 스쿨에서 배우고 얼마전에 파리로 왔어요.”

“오호 그래? 그럼 핸드타이드 부케는 만들 줄 아니?

“네 당연하죠! 실기시험 평점도 좋았어요 평가서도 보여드릴 수 있어요”

“하하하 그냥 지금 보여주렴. 여기 있는 꽃 맘껏 골라서 부케 하나 만들어볼래?”

“네 좋아요 보여드릴게요!”


꿈에 그리던 기회가 두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 온 순간이었다. 이 기회를 온전히 꼭 잡아쥐기 위해서는 일단 부케부터 먼저 잡아야했다.

나는 얼른 멋드러진 부케를 하나 만들어 보이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에서 생각지 못 했던 난관에 부딪혔다. 꽃을 맘껏 고르라니. 이제껏 학교에서 골라주는 정해진 꽃으로 만드는 것만 해 봤지, 직접 꽃을 골라 본 적은 없었던 나에게 꽃을 맘껏 골라서 만들으라니! 지금까지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었으니, 꽃을 고르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지 못 했었다. 나는 눈 앞에 펼쳐진 커다란 팔레트에서 또다시 고민에 빠졌다. 이 중에서 내가 최고로 예쁜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꽃을 고르기가 더 어려웠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이 꽃을 집어서 저 꽃 옆에 대어보고, 다시 이 꽃은 가져다 두고, 다른 꽃이랑 대어보고...


그렇게 꽃을 고르기 시작한지 20분정도가 지났을까. 혼자 땀까지 삐질삐질 흘리며 외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던 내게 다시 다가 온 주인 아저씨는 너무 느려서 안 되겠다며 이번에는 그냥 본인이 골라주는 꽃으로 한번 만들어 보는걸로 하자고 하셨다. ‘아아..나는 이미 틀렸구나..’라고 생각하며 골라주신 꽃으로 정성스레 부케 하나를 만들어 보였다. 물론 그것도 아주 느렸다. 이 꽃을 이쪽에 대 보았다가 다시 반대쪽에 대 보았다가,, 이 꽃을 집었다가 저 꽃을 집었다가,,그렇게 한참을 공들여 만든 부케의 줄기는 이미 너무 뜨끈뜨끈해져 있었다. 이미 나는 안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끝까지 완성은 해서 보여주고 싶었다.


내가 내민 부케를 받아 든 아저씨는 “아주 예쁘네”라고 해 주셨다. 예의상이겠거니.. 아쉽지만 우리와 일하는 것은 조금 어렵겠다는 말이 나오겠지? 라고 생각했는데, 주인 아저씨는 여전히 유쾌하게 웃으시며 말했다.


“좋아! 내일부터 부티크로 10시까지 나오렴’


그렇게 계속 덜덜덜 떨기만 했던 그 날의 기억이 내가 파리 플로리스트계에 첫 발을 내딛었던 날이다.

나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말할 수 있지만, 없는 자신감을 갑자기 만드는 방법은 정말로 없다.

그냥 눈 딱 감고 나의 자신감을 방해 하는 두려움이란 녀석을 깨뜨려버리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