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parisienne

나는 파리지엔느가 되기로 했다

by Rose in paris



‘어떤 삶을 살고싶니?’


paris에 와서 새로 생긴 취미 중 하나는 혼자 휘적휘적 산책을 하다가 눈에 띄는 카페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커피 한 잔을 홀짝이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 이었다. 참 신기한 것은 그렇게 테라스에 앉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여유로워 보인다는 것 이었다. 여유롭게 여행을 즐기는 여행객들 뿐만 아니라, 진짜 파리지앵들 조차도 모두 느긋 해 보였다. ‘어쩜 길거리에 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수가 있을까...’하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 반갑게도 저멀리 열심히 뛰어가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멋지게 운동복을 차려입고 조깅을 하는 파리지앵들이었다.


항상 바쁘게 뛰어다니던 서울에서의 내 모습이 떠 올랐다. 모두들 어딜 그렇게 가는건지 시간에 상관없이 막혀있는 도로, 무언가에 쫒기기라도 하듯 헐레벌떡 뛰어다니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던 지하철의 풍경이 오버랩 되면서 지금 이 곳, 파리의 어느 테라스에서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앉아 여느 파리지앵들처럼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고 있는 내가 참 낯설게도 느껴졌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뛰어다니게 만들었던 것 일까?


거기에는 물론 이것도 배우고 싶고, 저것도 해 보고 싶은 나의 호기심도 한 몫을 했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시간에 불안함을 크게 느꼈다는 것이다. 항상 바쁘게 움직이고 뭐라도 해야만 나의 삶이 가치있게 느껴졌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양말 한 짝 처럼 느껴졌다. 빨리 무언가를 배워서 빨리 무언가를 이루고 싶었다. 이런 것도 일종의 강박증이라고 볼 수 있으려나.


도대체 왜 나는 좀 더 여유로운 마음으로 살지 못 했을까. 한국에서의 나는 늘 미래를 위해서 오늘을 열심히 살아내는 느낌이었다. 그 미래가 뭔지, 사실 그게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20살에는 꼭 대학교에 들어가야하고, 25살 즈음엔 취업을 해야하고, 30살 즈음엔 결혼을 하고, 35즈음엔 애가 몇이 있어야하고, 40살엔 자산이 얼마쯤.... 끝도없이 정해진 계단을 헉헉거리며 따라 올라가야한다니. 심지어 왜 그래야하는지 이유도 모르는 채. 그냥 ‘남들이 다 그러니까’라는 이유로 모두가 똑같이 살다가 똑같이 죽어야 한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논리인가.


그나마 나는 하고 싶은 거라도 있었지만, 나의 사랑하는 두 동생들은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들에게는 잠시 경로에서 이탈하여 꿈을 찾을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고, 그냥 당장 주어지는 공부를 해야했고, 때가 되어 취업을 했고, 지금도 종종 자기가 뭘 원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오늘도 평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바퀴를 굴린다. 나는 씁쓸한 마음으로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비우고, 해가 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아직은 급하게 뛰어다니는게 익숙해서 인지, 곧 출발 해 버릴 것 같은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파리 한복판에서 마저 급하게 뛰어가다가 그만 지나가던 아주머니와 살짝 스치고 말았다.

‘pardon,pardon, je suis très pressé’[죄송해요,죄송해요,.제가 지금 너무 급해서요..]

‘oh...mademoiselle doucement, dou-ce-ment’[오 마드모아젤..진정해요, 천-천-히 가요]

크게 부딪힌건 아니지만 죄송한 마음에 연신 고개와 눈빛으로 인사를 전하고 버스에 올랐다. 문득 천천히 가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다는게 고맙다.

아- 파리지앵들의 여유는 그런거다. 지금 저 버스가 떠난다고 해서 내가 뛰어갈 필요는 없다는 마인드.. 나는 다음 버스를 타면 되는 거니까.


이 곳에서 나는 삶에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공부가 하고싶으면 공부를 하고 그러다 갑자기 요리가 하고싶으면 요리를 배우기도 한다. 모델을 하다가 변호사가 되는 친구도 있고, 가수가 된 남자친구를 위해 30살에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매니저가 된 친구도 있다. 직장을 다니다가 다시 배우고 싶은게 있으면 학교를 가기도 하고, 40살에 결혼을 하거나 혹은 결혼을 하지 않고도 아이까지 낳고 잘 살거나, 이혼을 하거나 여러번 결혼을 해서 가족관계가 아주 복잡한 사람도 많다. 그렇다고 누구하나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없다. 다 각자의 삶이 있는거니까. 누가 감히 타인의 삶을 평가하랴. 모두들 그저 각자의 리듬대로 각자의 삶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나는 결국 누가 놓아둔건지도 모르는 허들을 무리해서 넘어가며 달려야하는 장애물 경기보다는 나만의 리듬에 맞추어 완주만 하면 되는 마라톤을 하기로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