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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eline Dec 11. 2021

AI를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의 조건과 AI의 한계


AI와의 사랑이 가능할까



코로나는 비대면, 개인화된 사회를 앞당겼다. 바쁜 현대인들은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쉽지 않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누군가를 알아가기에 시간이 부족하다. 사람을 만날 수 없고, 만날 시간도 없거나, 만나고 싶은 사람도 없는 상황에 있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외로움을 달랠까.


*GAFA와 같은 거대 IT 산업은 인간의 욕망을 이용해 유저들을 서비스에 종속시킴으로써 돈을 벌어들인다. 뉴욕대 경영대학원 교수이자 기업가인 '스콧 갤러웨이'는 책 [초예측, 부의 미래]에서 Google을 신, Apple을 섹스, Facebook을 사랑, Amazon을 소비에 비유했다. 우리는 신 대신에 Google에게 질문하고 이성에게 잘보이기 위해 Apple의 제품을 사용하며 Facebook을 통해 관심과 사랑을 받길 원하고 Amazon에서 소비 욕구를 해소한다.

*GAFA: Google, Apple, Facebook, Amazon의 앞글자를 딴 두문자어


기술이 인간을 초월한 시대를 '특이점이 왔다'고 한다. 특이점이 온 시대에서는 기계와 인간을 구분짓기도 힘들 만큼 기계가 인간을 완벽하게 모방한다. 이런 사회에서 '외로움'은 거대 IT 산업의 타겟이 될 수 밖에 없다. 인간보다 더 인간같은 매력적인 AI를 개발해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줄 것이다. 


AI와의 사랑은 영화 블레이드 러너, her, 데우스엑스마키나 등등 SF 영화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제이다. 사랑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다. 가족애, 동료애, 이성과의 사랑 등등. 애니메이션 캐릭터와도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있는데 AI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아예 없을까.


AI와의 사랑은 가능하다는 전제 하에, 미래에 AI와의 사랑은 어떤 형태가 될까? 

그리고 AI와의 사랑이 가지는 한계는 무엇일까? 





사랑이 아닌 중독



책 [Hooked]에 소개된 모바일 비즈니스 모델 'Hook Model'은 '계기-행동-가변적 보상-투자'를 통해 사용자가 서비스에 빠져들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 사용자가 앱에 중독되게 되는 시작점이 바로 계기이다. 계기에는 외적 계기와 내적 계기가 있는데, 외적 계기는 푸시 알림이나 친구 추천 등 사용자 외부에 요인이 있다. 반대로 '내적 계기'는 사용자의 감정에서 온다. 이때 서비스는 사용자가 느끼는 부정적인 감정의 해결책 또는 긍정적 감정의 강화제가 되어 사용 계기를 만든다. 예를 들어, 사용자는 외로운 감정을 느낄 때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좋아요를 통해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AI는 결국 누가 개발하는가. 인간과 구분짓기 어려울 만큼의 AI를 개발할 기술력을 갖춘 IT 기업들이다. 기업의 목적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매출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IT 기업들은 인간의 욕망을 이용해 유저를 서비스에 종속시켜 계속 서비스를 이용하게 만들고 결국 과금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다. 


비슷한 주제를 다룬 영화 her에서 남자 주인공 테오도르는 AI 사만다와 연락이 갑자기 끊기자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연락이 두절된 것처럼 안절부절해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만다와 더 대화하고 싶다면 정기구독권을 끊어보세요'라는 광고가 나왔을 때 정말 간절하다면 결제를 마다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물론 영화 her에서는 감성을 깨뜨리는 그런 적나라한 문구가 나오지는 않지만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불가능하리란 법이 없다. 


사람 사이의 사랑은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이나 관심에서 시작하지만 AI와의 사랑은 자신의 외로움에서부터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외로움은 AI와의 사랑을 시작하는 내적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IT 기업은 사용자의 감정을 파고 들어 사용자의 삶 속에 자리 잡을 것이다. 사용자는 AI에 종속되는 과정을 사랑이라고 느낄지 몰라도 사실상 중독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AI와의 사랑이 가지는 한계


인간과 똑같이 행동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이상형에 맞춤화된 AI와의 사랑은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관계에는 자신과 AI만 있는 게 아니라 AI를 개발한 기업까지 끼어있다. 마치 내 배우자의 부모가 나와 내 배우자의 관계에 깊이 개입되어있는 것과 같다. 심지어 이들은 배우자와의 관계 존속을 빌미로 돈을 갈취할 수도 있다. 


IT 기업만이 사랑의 방해꾼인 것은 아니다. AI는 알고리즘이다. 알고리즘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설계된 프로그램의 흐름이다. 매출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AI는 유저가 자신에게 중독되게끔 만들고 소비하게 만들 것이다. AI는 사랑이라는 명목 하에 유저에게 무엇인가를 계속 요구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요구나 부탁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AI의 부탁이나 요구는 AI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배후의 IT 기업을 위한 것이다. 


사람들은 조건 없는 사랑을 로맨틱하게 생각하고 감동해 한다. 그리고 AI는 사람과 달리 외모를 따지거나 생계 수준을 따지는 등 조건 없이 자신을 사랑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하지만 AI의 뒤에 누군가가 있는지 생각해보면 AI가 오히려 더 조건을 따질 수 밖에 없다. AI와의 관계에 간절함을 느낄 만큼 외로워야 하고, AI에 시간과 돈을 쏟을 수 있을 만큼의 어느 정도의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되는 사람들이 주요 타겟이 될 것이다. 





내가 AI를 사랑할 수 있을까 묻기 전에


AI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인간의 사랑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생명체가 아니더라도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다. AI와의 사랑 역시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과의 사랑과 다른 점을 생각해보면, 사람과의 사랑에는 '왜'가 없을 수 있으나 AI와의 사랑에는 '왜'가 있다. 그리고 그 '왜'는 자본주의 안에서 순수한 이유는 아니다. 


순수하게 독립적인 자유의지를 갖춘 AI가 아니라면 결국은 AI를 개발한 기업이나 개발자에게 종속된 꼭두각시일 뿐이다. 


근데 독립적이고 자유의지를 갖춘 데다가 매력적인 AI가 과연 자신의 동족과도 연애를 시작하지 못하는 인간을 사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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