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처방전
중년의 여성 에이바는 남편 짐의 외도로 이혼했다. 자녀인 윌과 매기는 해외로 유학을 나가 있고 20년 넘게 함께 했던 남편 짐은 이제 곁에 없다. 갑자기 혼자가 된 에이바는 도서관 사서이자 친구인 케이트에게 그녀가 운영하는 북클럽에 참여할 수 있게 간곡히 부탁한다.
이 북클럽에는 1년 짜리 프로젝트가 있다. 1년 동안 달마다 각 멤버들이 추천한 자신의 인생 최고의 책을 다같이 읽고 토론하는 것이었다. 모임을 할 때는 책의 시대적 배경에 맞게 드레스 코드를 정하기도 하고 책에 나오는 음식을 준비해 먹기도 한다. 에이바는 자신의 인생 최고의 책으로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를 선택했다.
에이바는 사실 어린 시절 동생과 엄마가 죽은 사건 이후로 이 책 외에 다른 책은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에이바의 엄마는 동생 릴리가 죽자 얼마 안가 차에 몸을 실어 뛰어 내렸다. <클레어에서 여기까지>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가 살아있는 가족 대신 죽은 자식을 생각하며 죽음을 택하는 내용으로, 에이바가 겪은 사건과 비슷해 그녀는 몇 번이고 이 책을 반복해 읽었다.
이 책은 다른 사람들의 책과는 달리 무명 작가의 소설이고 다른 사람들은 책을 구하기 힘들다며 바꾸기를 요청했지만 에이바는 이 책을 고집했다. 그 대신 직접 작가를 초대할 수 있다고 선언까지 해버리며 12월이 되기 전 어떻게든 작가를 찾아야 했다.
북클럽에 다니면서 자신의 아들 뻘 되는 남자 루크와 잠시 연애를 하기도 하고, 남편 짐이 다시 예전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까 물어보기도 하지만 에이바는 두 남자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기로 한다. 그리고 멤버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클레어에서 여기까지>의 작가를 찾아나선다.
한편 매기는 마약과 섹스에 중독되어 방황한다. 원래는 피렌체에서 미술사를 공부하기로 부모님과 약속되어 있었지만 바에서 만난 중년의 남성 쥘리앵을 따라 프랑스 파리로 간다. 그곳에서 마약에 취해 정상적인 삶을 잃어버린다.
그녀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자신을 ‘작가'라고 소개하고 때때로 문득 떠오르는 문구를 메모하기도 하지만 마약 때문에 제대로 된 글을 쓰지는 못한다. ‘쥘리앵을 멀리해야 해', ‘마약은 절대 다시 안할거야'라고 다짐하고 벗어나려 노력하지만 매기의 삶은 고무줄처럼 다시 되돌아간다.
그러다 헤로인을 과다 복용한 매기는 병원에 실려 가고 죽을 고비를 넘긴다. 일주일 간의 지옥 같은 금단 현상을 넘기고 퇴원한 매기는 왠지 편안한 느낌을 주는 책방 ‘가니메데스 북스’에서 일하게 된다. 매서운 눈빛으로 따뜻한 수프를 끓여주는 책방의 주인 ‘마담', 그리고 지금껏 유럽에서 만난 남자들과 달리 정직하고 자상한 ‘노아'라는 남자를 만나 매기는 다시 정상적인 삶을 되찾기 시작한다.
대략적인 내용은 이렇고 등장인물들의 심리 묘사, 그날의 사건(동생과 엄마의 죽음)과 현재를 오가며 나름 놀랄 만한 진실들이 밝혀진다. 사실 뻔한 반전이기는 했지만, 가족의 죽음은 알면서도 눈물이 나오는 소재이다.
에이바가 겪은 사건처럼 누구에게나 인생의 굴곡이 있다. 내게도 인생을 살면서 힘들었던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극복했나 생각해보게 되었다. 게임도 유튜브도 사람을 만나는 것도 더 이상 즐겁지 않을 때, 슬픔과 좌절 그리고 무력감에 절여졌을 때, 불행한 사건들이 겹쳐서 일어날 때 나도 에이바나 매기처럼 방황하곤 한다.
인생에 문제가 생겼을 때 책은 내게 처방전과 같다. 처음엔 방황하지만 결국은 돌고 돌아 책을 짚게 된다. 왜 살아야하는 지 의문이 들 때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외로움이 느껴질 때는 ‘홀로서기 심리학', 나쁜 습관이 스며든 것 같을 때는 ‘아주 작은 습관의 힘' 등을 읽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들이 내 인생 최고의 책은 아니다)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고 책을 읽으면 다시 원래 삶의 궤도로 들어서는 것 같다. 에이바와 매기도 각자의 이유로 불행했지만 책을 통해 상처를 치유한다.
사실 이 책은 처방전은 아니었다. 글쓰기 모임에서 읽어오기로 한 첫번째 책이어서 읽었을 뿐이었다. 처음엔 별로 기대하지 않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책에 빠져들게 되었다. 누구도 곁에 없는 것 같은 공허함과 외로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중독. 가족을 잃은 적도, 마약에 중독되어 본 적도 없지만 에이바와 매기에 이입되어 그들이 어떻게 이 국면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응원하기도 했다.
북클럽에서 책의 배경을 재현해보고 열정적으로 토론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실제로 독서 모임이 이렇게 운영되면 재밌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독서 모임을 하고 있는데 한번 이 책을 제안드려 봐야겠다. 북클럽에 많은 영감을 줄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생 최고의 책은 무엇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내 인생 최고의 책은 뭘까. 스스로 생각해봤다. 굳이 한 가지를 뽑으라면 ‘꿈꾸는 다락방'인 것 같다. ‘생생하게 꿈꾸면 이루어진다'라는 말은 믿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책인 이유는 내게 ‘꿈'을 알려주고, ‘간절하게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걸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꿈꾸는 다락방은 중학교 2학년 때 친구가 내게 추천해주었다. 당시 우리 집 형편이 어려워 부모님이 싸우는 일이 잦았고 나도 사춘기라 부모님과의 갈등도 깊었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나를 우울하고 음침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다른 친구들처럼 밝고 행복하게 바뀔 수 있을까? 라는 생각으로 그렇게 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많이 웃으려 하고 집에서도 애써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목표를 세우고 계획하고 실천했다. 그 덕분에 집도 다시 화목해지고 친구도 더 많이 사귀고 다이어트도 하고 고등학교 때는 성적도 많이 올렸다. 나도 ‘꿈'이란 걸 갖고 노력하면 이룰 수 있다는 걸, 사람은 바뀔 수도 있다는 걸 알려준 책이었다. 꼭 성공이라는 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건 아니라는 걸 알려주지는 않았지만.. (실패하든 성공하든 인생이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신 건 법륜 스님이다).
그 이후로도 좋은 책들이 많았다. 책을 읽으면서 웬만하면 한번 씩 다 실천해보는 편이라 내 삶에 영향을 준 책이 정말 많다. 내가 먹는 음식이 내 몸을 만들 듯이 내가 읽는 책이 내 정신과 삶을 만든다. 책을 통해 배운 것이 자연스럽게 내 생각과 행동에 베어든다.
8월은 방황하는 달이었다. 책을 많이 읽지 못했는데 요새 다시 읽고 싶은 책들이 생겨서 저번 달보다는 마음의 양식이 풍부해질 것 같다.
빠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