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시키는 것이 자연스러운 한국

by 스텔라언니


한국은 세계에 유례가 없이 짧은 기간 후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한 유일한 국가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정치 또한 민주화를 이루었건만 한국은 “자살률 세계 1위”가 보여주듯 행복과는 거리가 먼 나라이다.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엄청난 경쟁 속에 교육을 받는다. 명문대학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취업문 또한 너무나 좁다. 취업이 된다 한들 평생 직장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늙어서도 입에 풀칠할 것, 병원치료비를 걱정해야 한다.

한국에 “경쟁”은 얼마나 깊숙히 들어와 있는가. 나는 큰 아이에게 첫영성체를 시키면서 너무 놀랐다. 카톨릭에서는 10살이 되면 6개월 정도 교육을 받고 “첫 영성체”를 하게 된다.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때 빵을 나눈 의식을 미사 때 재현하는데 그것을 “영성체” 라고 한다. 아이들은 10살이 되면 이 예식에 참여할 수 있다.

6개월의 수업이 끝나고 마지막날 성당 강당에서 파티가 열렸다. 아이들은 마지막 수업 때 교리시험을 봤다. 그 중에 성적이 좋은 아이는 앞에 나와 상을 받았다. 상을 받지 못한 대다수의 아이들은 입을 삐죽거렸다. 굳이 종교예식까지 성적순으로 상을 줄 필요가 있을까..

초등학교에서는 쓸데없는 대회가 많다. 미술대회, 독후감 대회, 심지어 줄넘기 대회도 열린다. 한 반에 고작 20여명이 있는데 굳이 제일 잘 그린 그림만 복도에 붙일게 뭐람. 자리가 모자라면 10명씩 나눠서 몇일에 걸쳐 전원의 그림을 전시해도 되련만.. 큰 애는 기대를 품고 몇일간 그림을 그려서 가져갔지만 뽑히지 않았다. 미술학원을 다닌 친구가 선생님의 도움으로 멋진 학을 그려왔다고 한다. 그 친구의 그림은 아이다운 맛은 없지만 기교가 뛰어났다. 큰 애는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참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온라인 학습이 4-5개월 진행되고 있다. 뉴 노멀 시대에는 어떤 형태의 학교가 운영될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 비대면 온라인 수업이 일반화되면 서울대 수업을 다른 국공립대학생들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다 점점 공유하는 교수들이 늘어나면 사립대도 참여하게 되고 결국 대학 서열화는 서서히 무너질지도 모른다.

경쟁이 사람을 얼마나 이상하게 만드는지 나는 첫 직장에서 톡톡히 경험했다. 나는 비정규직 강사였고 비슷한 처지의 직장동료들은 경쟁자였다. 처음에는 학교 선후배로 만나 잘 지내다가 경쟁심이 발동하면 꼭 이겨서 정규직 교사가 되야한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지금도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낯이 뜨거워진다.

한국이 헬조선에서 벗어나려면 경쟁이 줄어들어야 한다. 이렇게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사람은 행복하게 살기 힘들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엄청난 임금 차이를 개선하고 부디 많은 이들이 평온하게 살 수 있길..

작가의 이전글후기르네상스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