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스타코비치의 삶과 음악

by 스텔라언니


쇼스타코비치(1906~1975)은 러시아 혁명 직전에 러시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평생 소련 공산 체제하에 살면서 자유로운 창작 욕구와 공산당의 요구에 균형을 이루며 살아야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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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서 공부를 했으며, 피아노 실력이 뛰어나 젊은 시절 쇼팽 콩쿨에서 입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과부가 된 어머니와 여동생을 부양하며 사는 젊은 작곡가였죠. 불행히도 소련은 독재자인 스탈린의 집권 속에 매우 경직된 사회가 됩니다. 더구나 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공격을 받아 소련은 많은 인명 피해를 입었습니다. 살아 남은 사람들도 먹을 것이 부족해서 집에서 키우는 개나 고양이까지 잡아먹어야 했지요


스탈린은 공포 정치를 시행했습니다. 스탈린 치하에서 총 2천만명의 예술가가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따라서 쇼스타코비치는 평생 공포에 떨며 공산당의 입맛에 맞는 작품과 자신이 쓰고 싶은 작품을 같이 작곡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15개의 교향곡과 15개의 현악 4중주를 남겼습니다. 두 장르에서 뛰어난 표현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받습니다. 스탈린이 죽은 1953년 , 그는 교향곡 10번을 작곡했습니다.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비통해하는 쇼스타코비치 개인의 목소리가 담겨있습니다. 두다멜의 지휘로 들어보시죠


https://youtu.be/XKXQzs6Y5BY


그의 오페라 <므첸스크의 멕베스 부인>은 너무나 인기가 있어서 1936년에 모스크바에서 90여회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귀족부인이 새로온 일꾼 세르게이와 사랑에 빠지고 육체적인 관계까지 맺게 됩니다. 이 사실을 시아버지가 알게 되자 부인은 시아버지를 독살하지요. 영화 <레이디 멕베스>를 참고로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아래 동영상은 이 오페라의 일부분을 보여드립니다.

https://youtu.be/Cty0NQDff3g


1960년에 작곡한 현악 4중주 8번도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에머슨 콰르텟의 연주로 들어보겠습니다.

https://youtu.be/41HIXtBElH4



작곡가들은 자신의 이름을 사인처럼 작품에 남기는 경우가 많아요. 라소는 라와 솔음을 사용하여 곡 마지막에 '라솔'이라는 선율을 즐겨 썼지요. 바흐는 자신의 이름 (bach)에서 선율을 만들었어요. 독일에서 H는 시 음을 나타내거든요. 그래서' 시 플랫 - 라 - 도- 시 '라는 모티브를 작품에 많이 사용했어요.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는 자신의 이름에서 'D.Sch'를 차용했어요. S는 미 플랫음을 뜻했어요. 그래서 '레-미 플랫-도-시'라는 모티브를 많이 사용했지요. 위에 소개한 교향곡 10번이나 현악 4중주 8번에도 나옵니다.


그는 작품을 쓸 때 전통적인 교향곡 형식을 그대로 사용했으나, 악장 수를 늘리거나 표제를 붙이곤 했습니다. 그의 인생은 자서전 <증언>에 자세히 나와 있으니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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