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때 1년에 한번 미전을 했다. 미술과 친구들이 학교 복도에 작품을 전시했다. 잘 그린 작품은 1,2층에 전시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잔인한 처사였다.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은 3,4층에 걸었다
오케스트라 역시 성적순으로 자리에 앉았다. 모의고사를 보면 교무실 앞에 전교 80등까지 명단이 붙었다. 올해의 서울대 입학은 몇명인지가 제일 중요한 과제였다.
서울예고는 매년 100여명의 서울대 합격자를 배출했다. 졸업생의 1/4가 서울대에 진학했다.
그러나 자유와 창의성이 보장받아야 하는 예술 교육의 현장은 경쟁의 열기가 뜨거웠다.
한명 한명 예술적인 감각과 영민한 두뇌가 빛나는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경쟁과 입시에 지쳐 자존감은 바닥이었다.
더구나 대학교 졸업 후 어떤 예술가가 되어 사회에 공헌해야 할지 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다. 모두들 정명훈이나 조성진을 꿈꾸고 달렸지만 사회는 클래식 연주에 관심이 없었다. 외국에서 박사를 받아도 지방대 강사만 할 수 있는 현실에 동문들은 지쳐갔다.
실기 점수는 A~F로 매기고, 입시에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교육이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졸업 후, 진로 교육에 대해서도 좀더 적극적이어야 한다.
서울예고를 졸업한 많은 동문들이 사회에서 기쁘게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