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을 맴돌고 있으니 운동량이 부족한 거 같아 홈트도 하고 방에서 걷기도 한다.
그냥 걷기는 심심해서 묵주기도를 한다.
어릴 때는 엄마의 강권으로 묵주기도를 많이 했는데 아이를 낳고는 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고 이후 한동안 묵주기도는 안 했다. 그냥 묵주반지만 열심히 끼고 다녔다
그러다 올해 둘째가 첫영성체를 받을 때 묵주기도를 가르쳐줘야 했는데, 둘째에게 묵주기도 하는 법을 설명해주다보니 다시 하고 싶었다. 그래서 호수를 걷거나 혼자 산책을 할 때 종종 묵주 기도를 두 세단 하곤 한다. 마치 염주를 돌리며 걷기 수행을 하는 기분이랄까.
오늘은 빛의 신비를 했다. 묵주 기도는 예수의 일생을 4개 부분으로 나누어 묵상한다. 빛의 신비는 예수님의 공생활(청년이 되어 세상에서 하느님 뜻을 전하던 기간)을 내용으로 묵상하는 것이다.
빛의 신비 2단은
“예수님이 카나에서 첫번째 기적을 행하심을 묵상합시다” 이다.
나는 예수님이 첫번째 기적으로 카나(예전엔 가나라고 했다)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것을 좋아한다.
결혼식에 술이 떨어져 주인이 발을 동동 구르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좀 도와주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처음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라고 빼시지만(?)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일으키신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만든 포도주를 맛보며 매우 즐거워한다.
나는 이 기적이 첫번째 기적인 것이 참 좋은데, 과하지만 않으면 술 한잔을 해도 좋다 허락해주시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예수님이 술 한잔의 즐거움과 혼인 잔치의 흥겨움을 아는 분인 것 같아 좋다. 너그러움과 여유를 갖고 계신 분 같아서 좋다.
예수님이 만약 칼뱅처럼 술은 입에도 대지 말고 노래도 부르면 안되고 춤도 추면 안되고 하느님만 바라보며 경건하게 살라고만 하셨으면 나는 좀 답답해 하고 예수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다.
두번째, 아직 때가 아님에도 어머니인 “마리아”의 부탁을 거절 못하는 예수님의 모습이 보여서이다. 종종 가톨릭은 “마리아교”라는 오해를 받는데, 마리아는 신이 아니므로 가톨릭은 마리아를 신처럼 믿지 않는다.
그러나 가톨릭 신도들이 마리아에게 의지하는 것은 사실인데 이런 기적에서도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성모 마리아님, 부디 아들 예수님께 저희의 기도를 들어달라고 빌어주십시오”
라는 기도를 많이 하는데, 엄마의 부탁을 거절못하는 아들 예수님께 잘 좀 말해 달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다소 동화적인 상상일 수도 있지만, 예수님은 분명 성경에서 죽기 전 가장 사랑한 제자 요한에게 “이 분은 이제 너의 어머니시다”하고 마리아를 맡겼다. 그것을 근거로 성모마리아는 우리를 위해 빌어주는 우리 모두의 엄마로 보는 것이다.
여튼 매우 인간적이고, 성모님과의 유대관계가 엿보이는 카나 혼인잔치의 첫 기적이 나는 마음에 든다. 오늘도 창밖으로 호수를 보면서 묵주기도를 했다. 점심 먹은 것을 소화하려고, 혹은 한참 책을 읽다가 좀 걸을 때 1~2단씩 바치는 묵주기도가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