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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언니 Mar 24. 2023

오르간 반주의 즐거움

 열 두살 정도였던 듯 하다. 엄마가 갑자기 “미사 반주 해라”해서 미사 반주를 시작했던 것이. 성가곡은 악보가 간단하므로 큰 부담은 안 되었고, 선창하시는 아주머니가 날 아주 예뻐하셨던 기억이 난다.


중학교 때부터 고 2까지는 주일 새벽 6시 미사 반주를 했다. 아빠가 깨우면 무지 졸렸다. 그래도 세수를 하고 나면 정신이 번쩍 났다. 겨울철 새벽은 너무 추워서 아빠 손을 꼭 잡고 빠르게 걸어서 성당에 갔던 기억이 난다.


대학 다닐 때에는 청년 성가대 반주자가 되어 쉴새없이 계속 반주를 했다. 일년에 한번씩 성가대 연주회도 했다. 지휘자는 유급이었지만 반주자는 무급이었다. 성당은 음악 봉사자에게 수고비를 주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래도 그냥 했다. 우리 성당 청년 중에 음대생이 나밖에 없어서 반주할 사람이 마땅히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제대로 오르간 공부를 하고 싶어서 레슨을 받았다. 그리고 중국에 주재원으로 가기 전까지 평일 미사 반주를 했다. 미사 반주는 성실성이 요구된다. 빠지면 신도들이 무반주로 노래를 해야하므로 미사 진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연주를 하면서 언제 가장 좋았냐고 친구가 물어본 적이 있다. 돌이켜보면 나는 미사 반주할 때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미사 전이나 후에 묵상곡을 치며 기도에 도움을 드리는 것이 가장 보람찬 순간이었다.


 가끔 "오르간 덕분에 기도가 더 잘 되었어요"라고 칭찬해주시는 어르신도 계시고 성당 카페에 가면 수고한다고 커피를 종종 사주시는 할머니들도 계셨다. "오늘 연주는 정말 좋았다"며 칭찬해주시는 신부님의 말씀에 으쓱한 적도 있다. 연주를 하면서 내가 이렇게 사랑받았던 적이 있던가. 사람들의 지지와 칭찬이 달콤한 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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